“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다른 차의 앞부분을 건드려 헤드라이트를 부수고 범퍼를 찌그러뜨렸을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박벽이 심한 친구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데 빌려주시겠습니까?”
2008년 신시내티 메디컬 스쿨을 시작으로 미국 8개 메디컬 스쿨에서 지원자 전형을 위해 새로 도입한 복수 인터뷰(Multiple Mini Interview)에서 나온 질문들이다.
대학 성적과 MCAT시험 중심으로 선발하는 예전의 방법에서 벗어나 의사로서의 자질, 즉 의사소통ㆍ분석적 사고력ㆍ윤리관ㆍ사회성 등을 6~9명의 면접관이 시행하는 인터뷰를 통해 다각도에서 보겠다는 것이다.
의술은 뛰어나지만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의사로 인해 피해를 보는 환자가 늘어나고, 점차적으로 의료기술이 개인기에서 팀워크가 필요한 협력 체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실제로 의사와 환자간의 의사소통, 의료진의 팀워크 부족으로 인해 오진 혹은 실수가 발생해 병원에서 사망하는 환자가 1년에 10만 명에 가깝다.
사실 최근 들어 메디컬 스쿨의 교과과정 자체는 인문학ㆍ미술ㆍ음악 등 감성을 키울 수 있는 분야를 강조해왔다. 브라운 메디컬 스쿨은 미술사ㆍ문학 비평을 필수로 하고, 다루기 어려운 환자 또는 환자의 죽음을 보고 느낀 점을 에세이로 쓰는 과제를 준다.
아이오와 카버 메디컬 스쿨은 문학 저널에 글을 게재하도록 요구하고, 뉴욕대는 <아고라>라는 아트저널에 의학도의 글을 기고하게 한다. 컬럼비아는 이야기 의학(narrative medicine)과정을 개설하고 환자를 돌보는 과정을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하라고 주문한다.
이렇듯 메디컬 스쿨의 70%가 인문학 강의를 제공하고, 30%가 이야기 의학을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환자를 깊이 이해하고, 치료의 뚜렷한 목적과 의미를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사가 된다는 것에 있다.
메디컬 스쿨들이 15년 전 비즈니스계에서 강조된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에 눈을 뜨고 있다. 1995년 뉴욕 타임스의 과학 칼럼니스트 대니얼 골맨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감성지능 담론은 그 저널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논문이었고, 그 후 골맨의 책은 타임지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UC 버클리 박사학위 과정을 밟은 학생 80명을 40년간 추적한 논문이 있다. 그들의 사회성과 감성지수가 사회기여와 개인성취를 이루는데 IQ보다 4배 이상 더 작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매서추세츠의 섬머빌에 거주하는 남학생 450명을 40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자료도 IQ 보다는 당황ㆍ짜증ㆍ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주변 사람들과 얼마나 조화롭게 지냈는가에 따라 학생들의 성취도가 달라졌다고 발표했다.
미국보다 먼저 복수인터뷰를 채택, 실시해온 캐나다의 맥길 의대는 복수인터뷰에서 좋은 결과를 보인 학생이 환자와의 소통ㆍ문화적 소양ㆍ판단능력이 높다고 발표한 바 있다.
물론 인지능력이 성패에 전혀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스트레스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인간관계, 환경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 남다른 성취를 이룬다는 뜻이다. 타자와 환경을 대상으로 짜증을 부리기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이유로 적절하게 화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감성지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니얼 홍
교육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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