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협 회원들이 초벌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뒤쪽 계단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사람이 김성일씨.
연말 대학생 공모전 기금마련 회원들 한마음
“40년간 커뮤니티서 성장한 만큼 이젠 나눠야”
화가들 특유의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도 40년을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는데, 오랜 작가생활에도 누구 한사람 특별히 잘 나가는 일도 없어서 “그림쟁이는 배고프다”는 옛말을 예나 지금이나 다같이 증명하고 있는, 그러나 그래서 더 낭만적이고 인간적이며 본질적인 모임을 유지하고 있는 단체라 할 수 있다.
이 미협 회원들이 지난 달 31일 조각가 김성일 스튜디오에 모여 서머 바비큐 파티를 겸한 도자기 웍샵을 가졌다. 말이 웍샵이지, 사실은 미협이 추진중인 대학생 공모전의 기금모금을 위해 작가들이 동원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성일씨가 미리 초벌구이 해놓은 실용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여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웍샵의 취지였던 것이다. 집에서 쓸 접시나 몇 개 만들어볼 요량으로 따라나섰던 나같은 사람은 낭패한 심정이었으나 좋은 일 한다는데야, 달리 딴지를 걸 분위기가 아니었다.
역시 화가들은 멋있었다, 김씨가 초벌자기에 염료로 그리고 칠하는 방법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끝내자마자 다들 주저없이 그릇을 잡더니 쓱쓱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글씨도 쓰고 선을 그려넣고 색을 칠하는 솜씨들이 과연 프로들, 순식간에 각자 맡은 3개씩의 보울을 완성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붓도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사람으로서 우왕좌왕 손에 염료만 잔뜩 묻히고 있는 안쓰러운 내 모습을 보다 못해 사람들이 위로를 건넨다. 우연에 의한 무늬가 더 아름다울 수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유약을 칠해 구워내면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용기 백배, 보울을 두 개나 망쳐놓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이날 회원들은 60여개에 달하는 초벌 도자기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들로 만들어 기증했다. 이 보울들은 김성일씨가 유약 칠해서 재벌한 후 12월에 있을 장학금 모금전시회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이때 회원들은 각자의 작품 소품도 하나씩 기증, 좀더 다채롭고 풍성한 모금전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정말 착한 사람들이다.
올 연말 LA한국문화원과 공동주관으로 개최하는 대학생 공모전에 대해 조현숙 회장은 “오랫동안 커뮤니티에서 성장해온 미협이 이제는 나눠줄 때라고 생각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커리어를 구축하기 어려운 화가 지망생들에게 장학금과 전시기회를 주면 경력에 큰 도움이 되고, 우리는 2세들로부터 신세대의 예술세계를 배울 수 있는 공모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샌버나디노에 있는 김성일씨의 스튜디오는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일의 귀재라는 김씨가 광활하고 황량한 5에이커의 땅에 3년 동안 차근차근 자기 손으로 집도 짓고 스튜디오도 짓고 가마도 만들고 조경을 하고 텃밭도 가꾸어서 모든 사람이 탐내는 곳으로 만들어놓은 전원주택이다.
사람 좋아하고 호탕하며 열정이 넘치는 김씨는 이곳을 동료작가들이 마음껏 찾아와 ‘돈 안되는 전시’를 자주 여는 갤러리 겸 사랑방으로 개방하겠다는 뜨거운 의욕을 보이고 있다.
LA에서 한시간반이 넘는 길이라 이미 전날 토요일 저녁부터 와서 밤새 먹고 마시며 노래와 이야기꽃을 피운 사람이 열명이 넘고, 일요일 낮에 삼삼오오 카풀로 모여든 회원들, 몇몇은 부부동반하여 30여명 되는 사람들이 갈비와 꽁치, 옥수수와 고구마를 굽고, 텃밭에서 따온 무공해상추에 쌈장, 깻잎을 얹어서 맛있게들 먹었다.
딸기와 포도, 쩍쩍 잘라 내온 시원한 수박은 90도를 훌쩍 넘는 한여름 샌버나디노의 열기를 식혀주는 별미였다.
이날 모임에는 미협 회원들만 김소문, 박영국, 김옥경, 박혜숙, 미셸 오, 잉춘복, 김진실, 김원실, 김연숙, 손영숙, 최성호, 이정미, 남궁경, 니나 전, 김옥가, 변정국, 장사한, 김성종, 조현숙 등이 참석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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