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가수다’라는 말이 세상에 떠올랐다. 그러자 이어서 ‘나는 □□□다’라는 표현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 표현의 첫 인상은 퍽 신선하고, 자긍심과, 자신에 대한 사랑과, 당당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나는 부자다’는 잘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부자’는 사회 통념으로 볼 때 터놓고 자랑할 때 자칫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자다’는 퍽 매력적이다. 옛날부터 ‘부귀영화’라는 말이 있고 ‘5복’에도 두 번째에 ‘부’가 들어있다. 요즘은 새해 인사에 ‘부자 되십시오’라는 말까지 있어 당혹스럽다. 왜 모두 부자 되기를 원하는 것일까. 부자는 살림이 넉넉한 사람을 가리킨다. 살림이 넉넉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안정감이 있다는 것이며 물질적인 것을 뜻한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이 주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물질은 삶의 방편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부자’의 개념을 바꿀 수 없나? 왜 없겠나. 부자가 가지는 물질적인 것을 송두리째 비물질적인 것으로 바꿔보자. 친절한 말, 다정한 편지, 재미있는 생각, 좋은 친구, 놀이감 만들기, 여행하기, 책 모으기, 좋아하는 것 모으기, 집안 꾸미기, 예쁜 글 모으기,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와 모으기, 매일의 생각을 적는 메모장, 이야기 꾸미기, 친구와의 이야기 적기, 심부름하기 등등 한없이 이어진다.
사업을 하려면 ‘종잣돈’이 필요하다. 종잣돈이 있으면 그것을 요긴하게 활용하는 방법과 어떻게 늘릴까 연구하면서 사업을 경영하게 된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할 때 종잣돈이 있으면 기반이 생긴 것으로 안다. 만일 종잣돈을 빌릴 경우는 담보물이 필요하다. 담보물 없이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과는 멀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은 장래에 대한 투자이다. 어떤 방면의 일을 하든지 공부한 것이 기초를 이룬다. 그들이 공부하는 인성 교육과 각종 지식, 여러 가지 기술은 사회인으로 홀로 서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학교는 여기에 보태서 종잣돈까지 준다. 그것도 무담보로 준다. 아니, 각 학생의 잠재력을 담보로 무이자 종잣돈을 준다.
종잣돈의 종류와 금액은 학생들의 적응력에 따라 다양하다. 예를 들면, ‘놀라운 생각이에요, 그 다음은?’‘두꺼운 책을 잘 읽었어요. 그 내용을 간추려 봐요.’‘그 많은 친구들을 그리고, 각 개인의 특색을 쓸 수 있을까?’‘몇 가지 노랫말을 기억할까? CD로 만들면 재미있겠네.’‘장래의 꿈이 자꾸 변한다고 했지요. 어떻게 달라지는지 써 보면 어떨까?’‘여행에서 본 것, 모은 것들을 정리해 보세요.’‘매일 토픽 뉴스를 모아서 스크랩북을 만들까?’‘유머집을 만들어도 재미있겠네.’‘K-POP 노랫말을 써볼까?’‘한국역사에서 누구를 존경하지요? 인물사전을 만들어 볼까?’ 등등 종잣돈 종류도 끝이 없다.
학교는 학생들을 제각기 다른 부자를 만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학교들은 한술 더 뜬다. ‘이중언어 구사 가정 어린이가 그렇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또래보다 생각하는 힘이 유연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두 가지 언어를 자주 교환해서 사용하며 사고하는 습관 덕분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능력도 훨씬 빠르고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대학 뇌과학 학습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다. 학생들은 막대한 종잣돈을 받고 있다. 이것 또한 부자의 다양성이며 질적인 향상이다.
‘부자’ 의 개념이 바뀌면, 알록달록 문화가 꽃펴서 더 재미있는 세상이 된다. 하지만 사용하던 물건을 바꿔도 잠시 혼란이 있는데, 생각을 바꾸기는 더욱 힘들다. 그래도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머뭇거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허병렬
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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