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은 인민”모스코바 요리유학까지
남한 드라마 즐기다 적발, 한국 거쳐 미국행
택시운전·아내 도움으로 식당 오픈 새삶
그의 이름은 박명남(47)이다. 고급 스러운 붉은 색 요리사 복장을 한 그의 얼굴은 밝지만 눈빛은 우수에 차 있다. 그가 특별한 점은 그의 이 력에 있다. 그에게는 조선민주주의인 민공화국 상업대학 직인이 찍힌 ‘국 가공인 1급 료리사 자격증’이 있다.
북한에서 인정받던 요리사였던 그는 지금은 탈북 한인으로 8년째 남가주 에 살고 있다. ‘다시는 음식으로 벌 어먹고 살지 않겠다’던 그였지만 요 리는 그의 천직이었다. 그는 최근 세 리토스에 평양음식 전문점인 ‘옥류 관’을 열었다.
■ 내 고향은 평양시 중구역 박명남씨는 평양에서 태어난 토 박이로 소위 ‘선택받은 인민’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 전담 요리사였다. 당연히 하루 세끼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김일성 주석 에게 꽃을 전달하는 화동 역할도 해 봤다.
다른 인민보다 유복한 삶을 살 며 인민학교,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 기계대학에 입학했다. 부모 님은 아들이 기술을 익혀 확실한 직 장을 얻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 만 ‘호기심’ 많던 청년은 적성을 이 유로 기계대학을 그만두고 평양 상 업대학으로 옮겼다고 한다. 평양 상업대학은 김일성 종합대학 에 버금가는 명문대학이다. 진학 이유는 분명했다.
외교관집 친구들이 외국 문물을 자랑할 때마다 바깥세 상이 궁금했다. 1급 요리사가 되면 외국에 나갈 기회가 생긴다. 정 안 되면 평양 내 외국인 식당에서라도 근무할 수 있다. 자격증을 딴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였다.
■ 꿈은 이뤘지만 기약 없는 이별 때마침 88 서울 올림픽이 열리자 북한 당국은 89년 ‘세계청년학생축 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대회를 앞두고 북한 당국은 상업대학 요리 학과 박명남씨와 동기 몇 명을 선발, 7개월 집중교육 과정으로 모스크바 소비조합대학(엔카이대학)에 파견한다.
영양위생학, 요식업 경영 등 선진 문물 교육보다 박씨를 놀라게 한 것 은 ‘수퍼마켓’이었다. 소고기, TV, 냉 장고, 각종 과일 등이 끝도 없이 진 열된 것을 보고 그는 “북한에서 잘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그 때 눈이 뒤 집어졌다”고 회상했다. 두 번째 바깥세상, 92년 음식조리 실력 덕에 외화벌이가 목적인 사할 린 ‘진달래 식당’에 파견됐다.
외교 관 신분이기 때문에 아내와 남매도 곧 따라온다고 했다. 하지만 사할린 에서 남한 드라마와 현철, 주현미의 노래를 즐기다 중앙보위부에 적발됐다. 살아야 했다. 북송 직전 블라디 보스톡으로 도망쳤지만 북한에 머문 가족과는 영영 이별이었다.
■ 낯선 한국에서 새 출발위해 미국 도망 후 2년 동안 박씨의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러시아 정보기관 의 체포, 김일성 주석 사망에 따른 러시아 당국의 석방, UN고등판무관 도움으로 한국행. 1994년 한국에 도착하자 당시 국 가안전기획부는 남산타워 호텔 요리 사로 직업을 알선했다.
귀순가수 김 용이 개업한 ‘모란각’을 도와주며 히트를 쳤다. 식품 대기업 기술이사 로 영입돼 성공을 했고 2001년에는 북한의 어머니를 모셔왔다. 하지만 그는 사기를 당했고 사업도 망했다. 재혼해서 낳은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 2003년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 생활 8년째, 박씨는 택시운전 으로, 아내는 식당보조로 삶을 꾸렸다.
고생이 컸지만 독지가의 후원으 로 세리토스에 옥류관(13349 Artesia, Cerritos)을 개업했다. 박씨는 “자랑할 기술이 그래도 음식 만드는 재 주”라며 갈비, 평양만두, 냉면, 순대 등 평양 음식의 담백한 맛을 선보이 는 중이다. 몬트레이 국방부 산하 외 국어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평양말’ 도 가르치고 있다.
“실향민들께서 평양 음식 맛있다 고 한 마디 해 주니 힘이 나요. 나이 먹을수록 ‘강냉이 죽을 먹어도 북 한 가족과 사는 게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랑하는 제 삶이 언제 끝날까요. 북한이 변하고 환경 이 조성되면 꼭 고향으로 돌아갈 겁 니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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