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새로 나온 카메라에는 미소를 짓지 않으면 셔터가 작동되지 않는 기능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 ‘아차 이제 나는 사진 다 찍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사진사가 아무리 ‘김치, 치즈’를 요구하면서 웃게 만들려고 해도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평생 사람들로부터 나는 미소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새 카메라에 대한 기사를 읽다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아 나도 웃을 수는 있구나’ 하는 자각과 희망이 생겼다. 젊은 시절 나의 인생철학은 ‘이 세상에는 웃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였고 잘 웃는 사람들은 쓸개 빠진 사람이라고 생각 했었다.
미국에 와서 당황한 것 중 하나는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도 스쳐가는 사람들마다 나한테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얼마 안가 이 미소들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됐고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를 감별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미소를 짓는 것이 일반 대인관계, 가족관계, 직장 내 관계, 환자와의 관계에도 좋다는 것을 깨닫고 미소 짓는 연습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 역시 남의 찡그린 얼굴은 싫고 미소 짓는 얼굴이 좋다. 남도 나를 볼 때 똑같이 느낄 것이다.
우선 내 방과 사무실 여기저기에 거울을 걸어놓고 기회 있을 때마다 내 얼굴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몇 달 전에 한 미국인 환자가 찾아왔다. 문을 열고 환자를 맞은 후 잠깐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는 대기실로 나가 환자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같이 온 환자의 아버지가 “오늘 한번만 당신한테 진료를 받고 다음부터는 다른 의사한테 가기로 되어있다”고 말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환자와의 첫 상담을 끝냈다. 내 소견을 말하고 앞으로 다른 의사한테 가서 열심히 치료받아야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환자는 나한테 계속 오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의아해 했더니 설명을 했다. “사실은 당신의 첫 인상이 무서워서 그렇게 말했는데 상담하면서 당신이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고 좋은 인상을 받아서 치료를 계속 받겠다“는 것이었다. 미소의 힘을 절감하게 되었다.
미소에 인색한 나는 가끔 손해를 본다. 돈, 여자, 벼슬이 나를 피해서 간다. 얼마 전에 아이들 덕택에 집에 강아지 한마리가 들어왔다. 나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집을 어지럽히고 냄새가 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를 같이 지내다 보니 강아지에 대한 내 느낌과 생각이 아주 달라졌다. 꼬리치며 따라 다니고 출퇴근 할 때 제일 먼저 달려와서 매달리며 반겨주고 앉아있으면 옆에 와서 엎드려 있기도 하고 말도 걸고 한다.
나같이 웃기 힘든 사람을 미소 짓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한데 대단히 섭섭한 것은 강아지 자신은 미소를 지을 줄 모르는 것이다. 대신 꼬리를 흔든다. 만일 강아지가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을 더 황홀하게 만들 것이다. 아마도 꼬리는 흔들지 않게 되겠지. 나같이 미소 짓기 힘든 사람은 꼬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드디어 나는 늘 미소 지을 수 있고 찡그리는 주름을 영원히 펼 수 있는 비결을 발견했다. 평화스럽고 즐거운 마음을 갖는 것이다.
김병석 /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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