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에 여행길에 나서 미국 경제의 중심지라는 뉴욕과 서부 일대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6년 만에 가본 뉴욕 맨해턴은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맨해턴 한인타운인 32가는 6년 전과 비교할 때 변화가 없었다. 전과 똑같이 상권이 한 블록에 머물러 있었다. 이를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현지 선배는 “맨해턴 임대료가 비싸고 한인타운을 찾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기에 한 블록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을 한 여러 한식당에 비한인 뉴요커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플러싱 한인타운에서는 차이나타운에 간 듯한 착각을 받았다. 길거리의 간판들이 한자, 한자-한글 병행표기, 한글로 나뉘어 마치 세력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인이 한인타운으로 몰리면서 한인들이 점차 외곽으로 흩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뉴욕의 지인은 “중국인 커뮤니티가 똘똘 뭉치는 힘이 대단하다. 어렵게 이룬 한인상권과 한인소유 건물이 중국인 손에 넘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LA에서 시애틀까지 자동차로 2,600마일을 왕복한 서부의 모습은 ‘미국의 오늘’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첼로 강습으로 생계를 꾸리는 중국인 친구는 지난해 구입한 36만달러짜리 주택가격이 떨어져 울상을 지었고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뿌리 내리기 힘들어진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사람들은 아시안 가정의 교육열을 신기해 하지만 이민사회에서 자식들이 제대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부 해안선은 한없이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서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얼굴에선 좀처럼 웃음을 찾기 힘들었다. 북가주 항구도시 크레센트에서 숙박비 흥정을 벌인 여주인은 “가뜩이나 손님이 없어 가격을 내렸다”며 선수를 쳤다.
또 다른 해안도시인 유레카의 지방법원 앞에서는 스무명 남짓이 피켓을 들고 ‘월가 점령’ 시위에 동참했다. 한국과 비슷한 오리건주를 지나 시애틀에 도착했을 때 지역방송은 99% 시위에 나선 돌리 레이니(84) 할머니 얼굴에 최루액을 뿌린 경찰의 행동이 올바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오늘은 도보여행 중인 젊은이들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놔두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한 20세 인디언 청년은 또래 세대가 부족언어와 인디언 정체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시애틀에서 멕시코까지 여행한다는 19세의 크리스토퍼는 “부모는 중상층인데 독립한 나는 푸드스탬프에 의존해 살아간다”며 현 경제상황에 쓴웃음을 지었다.
묵묵히 자기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깊은 경기침체의 골짜기 속에서 많은 젊은이들의 표정에는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이 현재 미국의 삶의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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