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퀸즈 플러싱 독자 백만옥씨
1969년부터 44년간 꾸준히 구독
매일매일 지식과 정보 제공하는 생활의 반려자
2000년부터 11년간 오피니언란에 글 기고
“한국일보는 하루하루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 이상의 생활의 반려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미국 생활을 시작한 1969년부터 꾸준히 한국일보를 구독하고 있는 퀸즈 플러싱의 백만옥씨 가정은 도미 전 한국에 거주할 때부터 읽어오던 한국일보를 미국에서도 꾸준히 구독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1969년부터 뉴욕타임스와 함께 구독하기 시작한 한국일보가 어느덧 올해로 44년째를 맞았다는 백씨는 자신처럼 한국일보 장기애독자는 흔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일보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뉴스 전달과 광고 및 독자 문의에 빠르게 응답하는 한국일보를 가장 많이 그리고 꾸준히 찾게 된다는 백씨는 고등학교에서 역사과목을 지도했던 교사 출신. 미국에 건너온 뒤 뉴욕에서 사진학교를 다닌 후 30년이 넘는 시간을 상업 사진 전문 사진사로 활동해왔다.사진에 흥미는 있었지만 이게 평생 직업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었다는 백씨는 그래도 자신이 결정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인생관으로 살아오며 일에 충실했다고.
미국에서 사진사로 보낸 35년이라는 시간을 뒤로 하고 은퇴를 결정하며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한국일보에 자신이 쓴 글을 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당시가 한국일보에 ‘오피니언’ 코너가 생긴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는 백씨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교육과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활용해 11년이라는 시간동안 꾸준히 글을 실어왔다. 별도로 글공부를 한 적도 없었지만 자신이 쓴 글을 읽거나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마다 자신의 팬이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그간 한국일보의 기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백씨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당시 평양방문과 관련된 기사가 신문에 대서특필 됐었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당시 보도된 한국일보의 관련 기사를 아직까지도 보관중이라는 백씨는 “격동기 시대를 거친 뉴욕 거주 한인들에게 김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 소식은 너무 반가운 일이었다”며 이후 방북에 관련한 글도 작성해 오피니온란에 기고하기도 했다고.
백씨는 “한번 선택을 하고 결정을 했으면 끝까지 충직하게 함께 한다”며 자신은 영원한 한국일보의 독자임을 선언했다.자녀들의 양육과 교육을 모두 마치고 이제 아내와 화초를 키우는 재미와 운동하는 맛으로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는 백씨는 앞으로도 여전한 한국일보의 장기애독자가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한국일보는 경제나 엔터테인먼트, 문화와 같은 뉴스는 물론 삶의 한 부분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라는 백씨는 개국 45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더불어 다른 독자들과도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최현화 인턴기자>
■ 퀸즈 플러싱 독자 노사무엘씨
1974년부터 38년간 구독
’한국일보’ 머그잔에 커피마시며 하루 시작
빠른뉴스와 외국어.바둑 등 유익한 읽을거리 가득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 신문을 봐야지요.”
퀸즈 플러싱에 거주하는 올해 73세의 노사무엘씨는 매일 아침을 한국일보를 읽으면서 ‘한국일보’ 로고가 박힌 머그잔에 담긴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자칭 한국일보맨이다.
자신이 다니는 노인정에서도 지인들과 함께 한국일보를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는 노씨는 1974년 미국으로 건너온 직후부터 한국일보 구독을 시작했다고.수십 년 전 미국 우편망을 통해 한국일보가 배달되던 당시에는 하루 이틀 배달이 늦어지거나 도중에 분실되는 사고가 발생할 때면 직접 인근 업소나 길거리 좌판에서 판매하는 한국일보를 찾아 나서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챙겨 볼 만큼 한국일보에 대한 애정이 컸다고.
1975년에 아내인 노연희씨와 결혼한 후 맨하탄에서 3년 쯤 가발가게를 운영했고 플러싱에서는 2년간 가방 및 잡화점을 차려 영업했던 노씨는 브루클린으로 자리를 옮겨 1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세탁업을 하며 가족을 위해 애써온 전형적인 한인 이민자다.노씨는 수십년간 장소를 변경하면서도 업소에서까지 한국일보를 구독해 읽는 일을 쉬지 않았다고. 사는 것이 바쁘기도 하고 간혹 신문을 통해 전해지는 일본이나 독도·동해 분쟁 등의 소식을 접할 때면 분노가 치밀어 때론 언론을 멀리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국일보만은 꼭 다시 찾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들이 행여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잊을까 걱정돼 교회와 한글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며 한국어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노씨의 두 아들들은 모두 건강히 자란 것은 물론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한국어로 적힌 한국일보 신문을 읽고 이해하는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뿌듯해했다.
노씨 본인도 그간 다양한 업종의 업소를 운영하며 배운 요령으로 어지간한 영어와 일본어, 서반아어 등은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이 역시도 한국일보 신문의 도움이 컸단다. “건강에 관련된 섹션이나 역사, 정보 등 뉴스 이외의 읽을거리가 더욱 더 많이 실리길 바란다”는 노씨는 40년 가까운 시간동안 구독해온 한국일보에 바라는 점으로 ‘더 많은 읽을거리’를 실어달라고 주문했다. 한국일보의 뉴스나 기사의 업데이트가 월등히 빠르지만 신문 속에서 또 다시 찾아 읽으며 눈요기할 거리의 기사들이 더욱 넘쳐나길 사뭇 기대하게 된다는 바람이다.
매일 아침 신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뉴스가 실린 본국지보다는 로컬소식이 실린 뉴욕판을 가장 먼저 챙겨본다는 노씨는 “개인적인 선호도는 당연 한국일보”라며 “앞으로도 단순히 뉴스와 기사를 읽는 차원이 아니라 더욱 풍성한 지식과 정보는 물론 재미를 더하는 기사들로 지면이 가득 채워지길 기대한다”며 한국일보의 45주년을 축하했다. <최현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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