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2016년 3월 정치권에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연출됐다. ‘비박계 공천 학살’ 논란 속에 탈당한 대구 지역 국회의원들을 향해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대통령의 존영을 반납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당을 떠났으니 사진 한 장에 담긴 권력의 후광까지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대통령 얼굴을 빌려 표를 얻으려는 자와 그것을 빼앗으려는 자 사이의 다툼. 보기에도 민망한 ‘존영 논란’의 실체였다.
■강산이 한 번 바뀔 세월이 흘렀지만 그 풍경이 낯설지 않다. 6·3 지방선거가 두 달도 안 남은 시점에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 마케팅 자제령’을 내렸다. “이 대통령 취임 전 영상과 사진을 홍보에 활용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공문을 각 시도당에 발송한 것이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으로 오해받을 소지를 만들지 말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이번 조치에 대해 친명계 인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대통령의 후광을 적극 활용하려는 친명계와 이에 제동을 걸려는 ‘정청래 지도부’ 간 신경전은 또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대구에서 횡행하는 ‘대통령 마케팅’의 주인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첫 ‘민주당 대구시장’을 꿈꾸는 김부겸 후보는 대구 엑스코를 ‘박정희 엑스코’로 개칭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후보들은 대구경북신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명명하며 상징성 선점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대구역 박정희 동상 앞은 후보들의 ‘출마 성지’가 됐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박정희’라는 브랜드에 올라타려는 경쟁이 기묘하다.
■‘후광 정치’의 끝은 늘 허망할 수밖에 없다. 남의 위세를 빌려 자신을 과대포장하려는 행태 자체가 정작 후보 스스로 자기 존재감을 부정하는 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동네 일꾼을 고르는 선거다.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자신만의 실력으로 당당히 임해야 마땅하다. 현직이든 전직이든 대통령을 앞세울 이유가 없다.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이름 뒤에 숨은 후보 개개인의 정책 철학과 위기관리 역량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한영일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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