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 회장)
며칠 전이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이었다. 그래도 해마다 교회에서 여성 교우들이 신경 써서 준비한 친교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조촐하게나마 아버지의 날을 기념해 주고, 아버지들의 기를 살려주었었는데 올해엔 그마저도 없이 지나갔다.
미국 땅에서 바쁘게 사느라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 제대로 못하고 사는데 대한 질책같아 할 말은 없었지만, 왠지 서운하단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의 어버이날과 달리 미국에서 따로 아버지의 날을 제정한 이유가 궁금해져 모처럼 인터넷을 뒤적이다 이 시대를 사는 아버지에 관한 여러가지 놀라운 기사에서 눈길이 멎었다.미국의 어느 한 대학에서 학생 5만명을 대상으로 했다는 설문 조사에서 ‘아버지와 TV 중에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라는 질문에 68% 학생이 TV를 선택했다고 한다. 한국의 어느 조사기관에서 했다는 설문조사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여서, 대한민국 아버지 70%가 평일 5일동안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2시간 미만이었고, 대학생 44%가 ‘우리 아버지에게 있었으면 하는 것’ 으로 ‘재력’을 꼽았다는 쓸쓸한 내용뿐이었다.
2006년 아버지가 받은 초라한 성적표는 56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아버지의 55%가 ‘나는 좋은 아버지다’ 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50.6%가 ‘자녀가 고민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나와 의논한다’ 고 생각하지만 자녀들은 고작 4%만 ‘가장 먼저 의논하는 대상이 아버지’ 라고 답했으니 아버지와 자녀의 서글픈 동상이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다 문득 연초에 친구가 보내주었던 영상이 떠올랐다. 1992년 마르셀로나 올림픽 400m에 출전했던 데릭 래드몬드(Derek Redmond)에 관한 내용으로, 육상경기를 보던 시청자들과 관중들은 1등보다 이 흑인선수의 이름을 더 많이 기억하고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를 받은 선수이다. 얼마 전 어느 교회에서 홍보 영상을 제작하며 인용해 알려지며 인터넷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
결승전을 200여미터 남겨두고 갑자기 다리 근육파열로 주저앉은 그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나 뛰기 시작했을 때, 관중석에서 트랙으로 뛰어들어 아들을 부축해 결승점까지 함께 달린 그와 그의 아버지에게 6만 5,000명 관중들은 환호를 보냈다. 고통 속에서도 경기를 완주하고자 하는 아들의 의지와 열정에 이끌려 달려 나와 결승지점까지 함께해준 아버지의 사랑… ‘그래 끝까지 같이 뛰자구나. We’re going to together …’. 다시는 경기에 뛸 수 없는 그가 그 이후 더 많은 좌절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마다 아버지를 기억하며 이겨냈을 것으로 믿으며 눈물범벅을 하며 봤던 영상이다.
언젠가 친구가 술자리에서 하던 넉두리가 생각난다. 그 친구 또한 아이들과 가장 함께 하고 싶었던 순간이 처음 단어를 말하는 날, 첫 걸음마를 띠던 날, 처음 학교에 가던 날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도 함께하지 못해 회한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어느 날 문득 보니 자신은 집안에서 아이들과도 소통이 안되는 이방인이 되어 있더라고 말하며 쓸쓸해 했었다.
늘 아낌없이 주는 커다란 나무로 말없이 울타리가 되어주는 우리들의 아버지…사랑하는 가족들의 넉넉한 위로와 격려 한마디가 척박한 이민생활에 찌든 이 땅의 외로운 아버지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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