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리틀도쿄의 역사는 일본 커뮤니티에서 살아온 일본인들의 흔적을 보여준다. 20세기 초반에 형성된 리틀도쿄는 1924년 미국정부가 아시안 이민금지법을 제정하며 쇠락이 시작됐다.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했고 194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국내 일본인들을 강제 수용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리틀도쿄에서는 일본인들이 사라지게 된다.
리틀도쿄는 한때 흑인과 히스패닉의 거주지가 되기도 했지만 1970년대 일본 경제력이 크게 성장하며 일본 대기업들이 리틀도쿄를 미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고 일본 자본이 유입되며 재개발 붐을 맞게 된다. 리틀도쿄의 랜드마크가 된 웰러코트와 뉴오타니 호텔, 야오한 플라자도 이때 지어진 건물들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빅도쿄’에서 경제 버블이 터지며 미국의 리틀도쿄도 경제활동이 함께 위축되기 시작했고 주요 건물들이 유태인 등 외부인들에게 매각되며 리틀도쿄는 ‘미국 속의 작은 일본’이라는 특성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위기의 리틀도쿄에 뛰어든 사람들은 한인 투자자들이었다. 2008년에 한인 투자그룹이 야오한 플라자를 매입했고 지난해 말에는 또 다른 한인들이 웰러코트를 사들였다. 리틀도쿄의 가장 상징적인 2개 대형 상가가 한인들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리틀도쿄의 크고 작은 샤핑몰마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입주해 있고 리틀도쿄의 한식당은 스시 레스토랑보다 더 붐빈 지 오래다. 주말에 리틀도쿄에 나가보면 일본인들보다 한인들이 더 많이 눈에 띤다. 만약 한인타운에 일본 자본이 들어와 한인상권을 잠식해 들어온다면 한인들은 큰 반응을 보였을 텐데 리틀도쿄의 일본 커뮤니티는 조용하기만 하다.
리틀도쿄의 한인 소유 건물을 관리하는 한 관계자는 “한인들이 건물을 매입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일본 커뮤니티에서도 당연히 거부감이 있지만 일본인들은 절대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요. 민족성이 그런 거죠. 일본 단체들이 한인 투자자들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한인 빌딩 오너들도 리틀도쿄 커뮤니티에 귀를 귀울이죠”라고 말했다.
신년 축제 등 리틀도쿄의 큰 행사들이 한인 소유의 건물에서 열리기 때문에 일본 커뮤니티도 한인들에게 매우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리틀도쿄의 한인 상인은 “100년 전 침략자와 조국을 잃은 국민으로 만났던 두 민족이 세월이 흘러 미국에서 서로 화합해야 하는 관계로 만난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한인들이 일본 상권을 살려주는 입장이고 경제적으로 앞서간다는 것이 솔직히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인자본의 리틀도쿄 진출을 바라보다 보면 “역사는 언제나 동떨어진 원인에서 기묘한 결과를 가져 온다”다는 영국 시인 엘리엇의 말이 떠오른다.
<김연신 경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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