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어선 조국을, 미국선 한인사회를, 여생은 후세들을 위해”
한국어로 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선두로 K팝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때, 김영덕 한국어정규과목추진위원회 회장은 한인사회 곳곳에 그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영어, 한국어 다 하면 뜬다
“한국어정규과목 추진위원회 일을 2009년부터 시작하여 4년째 하고있다. 뉴저지 릿지필드 고교 한국어반에 두 번째로 5만달러(1만 달러는 한국정부 보조)를 전달해 개설 초기 2년간의 경비 제공 약속을 실천했고 앞으로 1명의 교사를 더 채용하려고 논의 중이다.”
김영덕 한국어정규과목추진위원회 회장은 요즘 한국어 교사 양성과 미국 고교 한국어 반 개설에 힘써오고 있다. “어느 한인 학부모는 아이를 아이비리그 보내려면 고등학교 3년동안 제2외국어로 불어나 스페인어를 해야지 한국어를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어가 어느 수준까지 되려면 고등학교에서 전공을 하고 대학에 가서도 계속 해야 한다.”
그는 고등학교 몇 년간만 하는 제2외국어는 초등학교 수준이므로 집에서 부모와 한국말을 하는 아이가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택하면 대학에서는 금방 완벽해진다고 한다. “영어와 한국어를 완전히 하면 뜨게 되어있다. 한국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가는 이때, 세계적으로 성장해가는 한국기업에서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한국말이 서툴면 금방 밀린다. 우리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여름방학에 세브란스어학원을 보냈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한국 입양아 스터디를 하고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한 연구를 해온 딸이 한국말을 더 잘 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텐데 하고 후회했다.”
김영덕은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로렌스 김은 브라운대, 프린스턴 대학원 출신으로 고전학 대학교수이고 딸 엘리나 김은 브라운대, 뉴욕대학원 출신으로 역시 고전학 대학교수이다. 그가 한국말 교육과 보급에 정성을 들이는 것이 한국말을 잘 못하는 두 자녀의 경험도 그 이유 중 하나라는 솔직담백한 고백이 마음에 다가온다.
▲긍정적 사고방식 배워
김영덕은 1935년 3월 2일 강원도 고성군 장전 출신으로 6.25때 거제로 피신 가서 53년 경남 거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8년 서울대 공과대학 토목과를 졸업한 후 1958~1963년 해군시설장교를 거쳐 1963년 캐나다로 유학, 1970년 론돈 소재 웨스턴 온타리오 유니버시티 토목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1973년 토론토 골드 어소시에이트(Golder Associste), 1973~1975년 미국회사(MRWJ Co.)에서 사우디 아람코국유회사 기술자문으로 일하던 중 현대 정주영 회장에게 발탁됐다.
75년 현대건설이 사우디 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냈는데 공사 금액은 당시 대한민국 1년 예산의 절반에 해당할 정도로 막대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와야 한다”는 정회장의 권유에 1976년 현대건설에 들어간 것이 이후 15년간 정주영 회장과의 끈끈한 인연이 이어졌다.
“정주영 회장과의 만남에서 롤 모델을 보았다. 정회장은 언제나, 어떤 경우라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옆에서 본 그는 진정한 애국자였다. 함께 일하면서 70,80년대에 한국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된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1976~1981 현대건설 부사장, 1981년~1987년 현대중공업 부사장, 해양사업본부장으로서 그는 현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를 만들고 해양유전개발 사업분야 세계1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그런 어느 날, 뉴욕에서 날아온 한통의 전화가 그의 발을 미국으로 향하게 했다.
마취전문의로서 베스이스라엘 병원, 크리드모어 정신병원 등에서 일하며 커네티컷에서 개인병원을 열어온 아내 김재진이 두 아이가 사립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더 이상 혼자 버티기 힘들어진 것이다.
김영덕이 서울대를 다니던 55년에 김재진은 이화여대 의대2학년생으로 신당동 명진교회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수성가한 집안으로 시집보내길 꺼려한 처가로 인해 두 남녀는 오래 기다렸고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졌다.
김영덕이 가족을 위해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오자 정주영 회장은 그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자동차와 상사를 비롯 현대그룹 60개 회사의 미주지역을 관할하는 현대종합상사 미주현지법인 사장을 1987년부터 1997년까지 했고 은퇴후인 1997~2002 현대중공업 고문을 했다.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뉴욕 한인사회와 인연을 쌓아갔다.
▲나도 뭘 해야지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 김재준 목사의 농촌 개혁운동에 동참한 적이 있다. 부엌과 화장실을 고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농촌개혁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뜻에 동감했었다. 1997년 은퇴하면서 내가 무얼 해야 하나 생각을 했다. 하나의 큰 뜻을 가지고 일하는 정주영 회장의 긍정적 사고방식이 떠올랐다. 첫째 한국을 위해서, 둘째 한인사회를 위해서, 셋째 아시안을 위해서 일하자는 결심이 섰다.”
그때 2세들의 주류사회 진출을 위해 애쓰던 유은희씨로부터 코리안 아메리칸 모임에 나와 연설을 해달라는 청이 왔다. 이후 김영덕은 2000년 아시안 아메리칸 연맹(Federation)이사, 이사장으로 휴먼 서비스를 시작했고 같은해 칼카(KALKA, 코리안 아메리칸 시민활동연대)이사로 활동하며 2세 정치인 배출에 힘썼다.
김영덕은 이미 한미관계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 및 집행위원으로 1987년부터 일하며 1993년에는 한미통상 및 교섭활동 지원과 한국기업 권익옹호를 위한 코참(KOCHANM, 미한국상공회의소)을 창립, 1, 2대회장을 4년간 한 후 고문으로 있던 중이었다.
한인사회에 깊이 발을 디딘 그는 2005~2006년 한인회 28대 이사장(회장 김기철), 2005년부터는 시민참여센터(구 뉴욕뉴저지유권자센터, 김동찬 소장)이사로서 동포사회의 권익신장에 힘을 보탰다. 한국과 미국을 아우르는 그의 폭넓은 봉사에 2009년 재외유공동포 시상식에서 국민훈장(목련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10년부터 한인사회연구센터 퀸즈 대학 공동이사장으로, 글로벌 한미재단 이사장으로서 정체성을 지닌 미래의 지도자 양성도 잊지 않고 있다.
“아내는 1987년부터 25년째 밀포드 커네티컷에서 개인병원(밀포드 워크인 메디칼 케어센터)을 열고 패밀리 서비스를 하고 있다. 몸이 아프면서도 오늘까지 일을 하는데 그 정신력이 대단하다. 보통 6일간 밤10시, 11시까지 환자를 보던 아내가 올 3월부터 시간을 줄인 것이 오전7시30분에 문을 열어 오후6시까지 문을 여는 것이다. ” 그는 그런 아내를 위해 저녁약속을 하지 않는다.
“갈 데가 많지만 낮에만 활동, 저녁에는 무조건 집으로 가서 저녁 준비를 해놓으면 병원 일을 끝낸 아내가 15분 거리인 집으로 온다. 아내가 보통 가정주부나 직장여성이 아니라 워낙 자기 일이 바쁜 사람이라 그것이 오히려 고맙게 생각된다.”
각자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오며 서로의 일을 존중해주는 부부의 그림이 그려진다. 여기저기 열심히 다니자면 건강도 필수, 김영덕은 매주 금요일은 좋아하는 골프를 치며 건강을 유지한다.
“10월 22일 두바이에서 2012년 월드 에너지 포럼이 열리는데 세계에너지 장관 40~50명이 모인다. 에너지 문제를 어떤 식으로 끌고가야 할 것인지, 아프리카 개도국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기술적 문제를 준비 중이다. 젊어서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일했고 미국에 와서는 동포사회를 위해서 일했다면 여생은 세계 개도국 에너지 문제를 위해 일하고자 한다.”
한국어정규과목 추진위원회 회장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2012부터 뉴욕시티 월드 에너지 포럼 이사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 그는 1.5세, 2세들에게 바람이 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긍정적 사고를 가지는 것, 정체성 확립에 무엇보다 한국말이 중요하다는 것, 자신의 커뮤니티, 이 나라, 더 나아가 아시아를 생각하는 시빅 마인드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을 위해 다방면에서 봉사해온 그는 후손들이 크고 넓게, 깊이 볼 것을 강조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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