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훈 <센트럴 커네티컷 주립대학교 경제학 명예교수>
사흘만 지나면 10월 9일 한글날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지금뿐만 아니라 당시 중학교 1학년 때 해방이 된 이후 줄곧 한글을 사용할 때마다 같은 감사의 심정이 그치질 않는다.
식민지 정책으로 우리들은 ‘창씨개명’정책에 따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었었다. 어쩌다가 우리말을 했을 때 일본 선생은 가차없이 우리를 벌하였다. 일본어 전용정책으로 해방당시 열 살 이상쯤 되었으면 지금도 곱셈(구구법)과 물건을 셀 때는 일본말로 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다.
소위 800만 신을 섬기는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또 (神道)를 우리에게 강요하여 신사참배도 억지로 했었다. 하지만 한 분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많은 기독교 목사/신부, 장로, 집사, 평신도까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는 첫째 계명을 지켜 신사참배를 거절하였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일본경찰에 연행 되어 고문을 당했고 심지어 순교까지 하였다. 교회에서 부르는 한글 찬송가 중 예수를 찬양하는 가사는 모두 먹으로 지워버린 것을 사용했었다. 일본 천황이 ‘신’이라는 교육 방침을 세웠기에 이에 어긋나는 가사를 모조리 없앴다.
해방당시 중학교 건물 안에는 비록 항복은 했지만 일본 군인들이 완전 무장해제를 받을 때까지 주둔하고 있었다. 수학을 담당하셨던 임무덕 선생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다. 감개무량했었다. 모두가 신이 나서 “가이갸, 거이겨…”라고 힘차게 소리를 내면서 읽었더니 선생님은 아직 일본군인이 바로 옆 교실 안에 있으니 너무 큰소리는 내지 말라고 경고하신 기억도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1957년 미국에 유학와서 지금에 이르렀다. 회고하면 중학교 1학년까지의 교육은 강제로 배운 일본말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자발적으로 배운 한글로, 대학원 이후는 강제와 자발이 반반인 영어로 교육을 받았다. 지금은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토대로 선택의 자유에 의거한 문화적 융합으로 삶을 즐기는 낙관적 인생관이 되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새삼 세종대왕께 찬사와 존경을 아끼지 않는 것은 이상과 실천의 위대함과 아울러 일편단심으로 국민을 위하여 특별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사실 때문이다. 어려운 한자에만 의존하던 당시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시어 “새로 스물여덟 자를 어린 백성을 위하여 창조” 하신 선견지명 (先見之明)을 충분히 발휘하셨다. 비록 최만리, 정찬송 등의 반대가 있었지만 집현전의 성삼문, 최항, 신숙주 등의 학사의 도움을 받아 세계에서 자랑스러운 한글을 선포하셨다.
지금은 자음 14자, 모음 10자, 도합24자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표현을 다 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인도네시아의 한 부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한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문맹자도 3%미만이니 선진국 수준이다. 최근 모음 10자를 셋으로 간소화한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점 (?)의 위치에 따라 ㅏㅑㅓㅓ ㅗㅛㅜㅠ(ㅡㅣ)를 모두 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에도 자음은 왼손, 모음은 오른 손으로 자모를 배열한 것도 현명한 결정이다. 여러모로 한글, 나아가서는 세종대왕에 대한 자랑이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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