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가락 못 없어질까, 평생 연습벌레로 살았죠”
10살때 처음 접한 여성국극단에 빠져 53년간 국악인으로 살아
전토예술 알린다는 사명감으로 주류사회 초청무대 공연
뒤 잇는 두 딸 있어 든든
미국에 한국전통과 문화 뿌리내리기 30여년, 우리 것을 지키는 마음은 남다르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만이 아닌 한국전통예술의 우수성을 알린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자리한다. 뉴욕한국국악원 박윤숙 원장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6일 맨하탄에서 열린 코리안 퍼레이드에서 뉴욕한국국악원의 어린이무용단, 주부무용단, 풍물패 등 100여명의 남녀노소는 울긋불긋한 한복 차림으로 화려한 행진을 했다. “머리부터 의상까지 철저히 준비한다. 80~100명의 한복을 3일전에 모두 세탁을 끝내고 밤새워 다린다. 퍼레이드날 새벽 6시 국악원에 모여 단정하게 머리 하고 곱게 분장한 다음 퍼레이드 장소로 이동한다. 28년째 그렇게 준비했다.”
다림질이 어려운 한복을 구김살 하나 없이 곱게 다리는 정성과 우리 것을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 이것이 뉴욕한국국악원이 미국에 한국전통과 문화의 뿌리를 내리는 근간이 되어왔다.
▲국악 배우며 더 이상 울지 않아
박윤숙(본명 두이)은 1947년 경남 거제도 태생으로 세살때 부모님을 따라 부산으로 이주, 그곳에서 자랐다.“10살때 부산에서 여성국극단 공연을 보고는 무용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친구와 함께 영도 다리 지나서 정정숙 무용단으로 춤을 배우러 다녔다.”
부산시내 초장동에 살았지만 시내의 무용소는 학원비가 비싸 영도다리 건너 먼 거리를 배우러 다니던 중 그만 어머니에게 들켜버렸다. 통영의 충무 이순신장군 제를 지낼 때 제사음식 담당자인 어머니는 가위로 딸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그 어머니가 박윤숙이 13세에 돌아가셨다. 중학생인 그가 몇날며칠 울고있자 10살위인 언니가 “뭘 하면 안울거냐?”고 물었다. “무용을 하고싶어.
”그래서 가야금과 한국춤을 두루 배우게 되었다. 부산지방문화재 조계선 선생에게 가야금 강태공류 가야금 산조를 배웠고 박봉술 선생에게 판소리 적벽가를 사사받았다. 그러다가 한국의 가야금 제1인자인 유대봉 선생의 연주를 듣게된다. “조계선 선생집에서 공연 뒤풀이에서 유대봉 선생의 가야금 소리를 듣고 완전히 꽂혀버렸다. 그후 7년동안 그분에게 가야금을 배웠다.”
1965년 서울로 올라가 유대봉 선생에게 유대봉류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전수받았다. 그런데 부산의 조계선 스승이 중풍으로 눕게 되면서 빨리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꼼짝없이 1년 반동안 부산에서 가야금을 가르쳤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선생은 아는 것이 많아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공부를 더 할 욕심이 났다”
그래서 서울로 가 유대봉 선생댁을 찾은 박윤숙은 뜻밖의 부음을 들었다. 바로 유대봉 스승이 대한민국 문화재에 선정되었으나 제자인 박윤숙이 연락도 안되고 하여 최종심사에서 떨어지자 그만 낙담 끝에 별세한 것이다. (이후 유대봉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와 병창 명인으로, 박윤숙은 2002년 ‘명인 박윤숙 고 유대봉류 가야금 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박윤숙은 지금도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않고 있다.
“앉음새부터 바로 해야지, 다리 꼬고 앉았다가 스승님이 쫒아버린 재벌 딸도 있다. 제대로 못하면 가야금통으로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그역시 평소 따뜻하지만 머리를 풀어헤친 채 춤과 국악을 배우려는 제자에게는 머리부터 단정하게 묶으라고 한마디 한다.
1973~1978년 박윤숙은 박귀희 선생을 찾아가 가야금 병창을 5년동안 전수받고 문하생으로 활약, KBS, MBC 등의 국악한마당에 출연하는 등 국악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1974년에는 김소희 선생에게 판소리 춘향가를 사사받았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온양 강씨인 남편감을 선보게되지만 정작 4년후인 28세때 인연이 맺어진다. 결혼후 차린 유리공장은 재계 매출순위 38위까지 오를 정도로 사업이 잘 나가다가 남편이 친구에게 보증을 서준 것이 부도가 나면서 모든 것이 날아가게 된다. 둘째딸을 낳고서 며칠 만에 사기당한 소식을 알고 병석에 눕게 된 것이 몇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당시 태권도 국가대표선수 출신인 남동생 박두복이 뉴욕에 살고있었다. “누나, 병 낫고 가라”는 말에 83년에 뉴욕으로 온 박윤숙은 그냥 여기서 살기로 했다. 이후 박윤숙은 미국에서, 남편은 중국에서 각자 자신의 일을 잘해내면서 서로 편하게 살고 있다.
▲뉴욕에 국악원을 열다
결혼후 3년간 무대에 서지 못했던 박윤숙은 원각사 법안스님을 만나게 된다. 4월 초파일이 되자 ‘누나가 한국에서 국악을 했다’는 그의 남동생 말을 들은 법안스님은 박윤숙에게 출연을 권했다. 무대에 오른 그를 본 스님은 ‘누나를 집에 숨겨두면 안된다’며 조그맣게 신문 광고를 내주었다.
‘가야금 가르칩니다’는 단신이 게재된 새벽부터 20통 이상의 문의 전화가 연달아 오면서 전화통에 불이 났다. 이것이 박윤숙이 뉴욕 한인들 앞에 서게 된 동기다.
“주위에서 국악원을 열어라, 한인들이 많이 사는 플러싱에 차리라고 권했다. 박정배, 김치중, 임달영, 박상원, 정창영, 이선옥 등 많은 국악인들이 중지를 모아 뉴욕한국국악원을 설립했다. 나는 길도 모르고 영어도 못한다고 사양했지만 초대원장을 맡았다.”
이렇게 시작된 뉴욕한국국악원은 지난 6월1일 창립 25주년 기념공연을 플러싱 타운홀에서 성대하게 열었다. 2001년 전미주한국국악진흥회를 설립하여 초대이사장과 2대 회장으로 6년동안 전미주 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악의 저변 확대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박윤숙은 2004년 카네기홀에서 국악인생 45주년 기념 공연을 했다.
2007년 뉴욕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가야금 특별독주회, 2008년 UN 반기문 사무총장과 각국 대사 초청 가야금 산조독주회에서 우리의 소리와 몸짓을 전세계에 알렸다. 2011년에는 뉴욕시 문화국의 엄격한 심사 끝에 14개국이 탈락하고 선정된 4개국의 한국대표로 ‘뉴욕전통음악가 문화재’라는 뮤지션 호칭을 받는 등 세계적인 국악인으로 인정받았다.
“번듯한 학교 건물 하나 없이 힘들게 국악원을 이끌어오고 있지만 2,000명의 제자들이 미주류사회에서 활약하고 있고 예술에의 열정과 기량을 전수한 두 딸과 문하생들, 든든하기 그지없다. 뒤를 잇는 두아이가 있으니 다들 부러워하고, 이만하면 잘살지 않았나 싶다.”
현재 부원장인 강유선(장녀, 34), 강호선(32) 두딸이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처럼 그의 양쪽에서 한국전통의 명맥을 단단히 이어가고 있다.두딸은 여름방학이면 한국의 임이조 스승을 찾아가 한국무용과 국악을 배웠다. 큰딸은 한국 전주대사습놀이와 춘향국악대전에서 큰 상을 타는 등 춤을 잘 추고 작은딸은 오북, 대북, 장구를 잘 다룬다. 박윤숙도 1985년 이매방선생에게 살풀이를 사사하는 등 배움에 대한 열정은 모녀가 끝이 없다.
요즘은 주류사회 초청무대가 많은데 지난 9월15일 퀸즈식물원에서 ‘뉴욕전통음악가 문화재’로서, 한국, 인도,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4개국 중 한국 대표로 가야금을 연주했다. 특히 뉴욕한국문화원 주최 한국정통예술체험 프로젝트에 뉴욕한국국악원이 참가하여 공립학교를 방문, 국악과 한국 춤을 공연한 후 북과 소고를 실습하는 등 뜻깊은 시간을 갖고있다.
“11월에 박윤숙 고 유대봉류 가야금산조CD 제2집을 제작한다. 오늘아침에도 두시간동안 가야금을 연주했다.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손가락의 못이 없어지므로 만사를 젖혀놓고 평생 연습을 게을리않는다”는 박윤숙 원장, 그는 국악인생 53년을 ‘지금도 무대에 서면 눈이 반짝 반짝 돌아간다’고 표현한다. 불현듯 그의 영혼을 울리는 가야금 소리를 듣고싶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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