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싸이 (Psy)라는 한국 가수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것을 보며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 이다.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 지역을 석권하고 삼성 TV가 세계를 제패하는 것은 한국인의 무한한 잠재력을 세계에 보여 주는 것 이다. 그러나 필자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이런 현상적인 것 들 보다는 본질적인 한국 문화의 뿌리이다.
지난 9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566돌이 되는 날이었다. 한글날이 국가 공휴일이었던 것은 이제는 옛 기억이 되고 말았다. 어떤 기념행사가 우리 한인사회에 있었는지 필자는 알지 못하나, 우리 한민족이 참으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은 한글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글은 단지 우리의 생각을 표기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와 언어와 한민족이 성취한 모든 것의 바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말이 아름다운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문자로 표현한 한글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의 캄캄한 압제 속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할 수 있었던 것도 한글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서정성과 무관하지 않다. 한문에 눌려 천대받던 우리의 정서가 한글을 통해서 꽃피운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를 가꾸고 보존하여 우리말을 더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의 당연한 사명이다.
그러나 필자는 요즈음 신문, 방송, 잡지와 젊은이들이 절제 없이 마구 쓰는 한국말을 들으며 깊이 우울해 하는 사람 중의 하나 이다. 무분별한 외래어의 남용이나 날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우리말의 학대를 슬퍼한다. 어느 분야의 으뜸인 사람은 ‘황제/여제’가 되고 따돌림을 받는 것은 ‘왕따’가 되었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 지 오래다.
오래전에 유행하던 농담 중에, 북한에서는 전등을 순수한 우리말인 ‘불알’로 부른다거나, 샹델리아를 ‘떼불알’로 부른다는 것을 들은 북한 학자 한 분은 북한에는 그런 상스런 말이 없다고 했다. 전등은 ‘전등’이요 샹델리아는 ‘무리등’이라고 말하며 길게 탄식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말이 혼탁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혼탁하다는 것과 같은 말 이다. 거칠고 투박한 말들이 아름답고 세련된 말들을 몰아내고 비어와 속어가 생활의 언어가 된다는 것은 정 깊고 아름답던 한민족의 가치관과 그 사유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뜻 하는 것 이다.
한글을 통해 우리 민족은 아름다운 언어와 정서를 오늘까지 보존해 왔다. 아름다운 것들은 사랑하고 아끼자. 예절 바르게 말하며, 어법에 맞게 깨끗하고 정확한 글을 쓰는 습관을 기르자. 우리 민족이 문화 민족인 것은 우리의 소중한 말과 글을 사랑함에 있다는 것을 이 한글날에 다시 한 번 다짐하며 살아가자. 높은 하늘 청명한 가을에 한글날이 다시 국가의 공휴일로 회복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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