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요정의 계곡,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향해 갑니다. 연전에 ‘내셔널 지오그라피’의 책갈피에서 이 곳 풍광 사진들을 처음 보았습니다. 자연이 빚어낸 색과 형상의 오묘함에 숨이 멎을 듯한 전율을 느꼈었지요.
마치 화성에라도 온 듯한 생경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여행의 묘미는 상상을 뛰어넘는 4차원의 세계를 이 지구 상에서 맞닥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앙카라를 떠난 버스는 남쪽을 향해 달립니다. 반 사막성 기후에 거친 산맥을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두어 시간을 올라갔습니다. 오스만 터어키의 용맹스런 전사들의 근육질을 연상케하는 골산(骨山)들입니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은 지형을 예고라도 하듯 해발 1000m 산 속에 갑자기 수평선이 나타났습니다. 소금호수, ‘투즈 골루 (Tuz Golu)’입니다.
터어키에서 두번 째로 크다는 그 내륙 호수는 얕은 물 위에 하얀 소금으로 덮혀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레익 타호보다 3배나 넓다더니 멀리 수평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끈끈한 소금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맨발로 호수가운데로 걸어갑니다.
K형, 여행객의 치기라고 웃지마십시요. 좀 멀리 떨어져가는 아내가 흰 캔버스속의 피어난 수선화처럼 보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바닥을 적시고 있는 물기로 인해 그녀가 마치 물 위를 걸어가는 듯 합니다. 실루엣이 물과 하늘에 떠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환상의 나라로 가고 있음이 분명하지요.
높은 에르키에스(Erciyes) 산의 흰 정상(3917m)이 아까부터 우리들의 보호자인 양 따라 옵니다. 거대한 옛 화산이 태곳적 부터 이 계곡에 벌여놓았던 역사를 들려주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계곡의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연황색 망또를 입은 수도사들의 모습이 들어납니다.
하나, 둘, 그러다가 너댓이 함께 웅기중기 서있거나 천천히 걸어가는 듯도 합니다. 그들 뒤로 버섯 숲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송이버섯들처럼 검은 머리를 이고 포동포동한 줄기가 튼실한 버섯기둥들입니다. 누군가는 요정들이 사는 집의 굴뚝(fairy chimneys) 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이곳이 유명한 카파도키아의 기암(寄岩)지대이지요. 천만년 전부터 이 곳엔 화산활동이 잦았다고 합니다. 용암과 화산재가 반복적으로 분출되며 수백 미터의 지층이 쌓였다지요. 그 위에 바람과 비는 하늘이 디자인한 대로 조각품을 새겨넣기 시작했습니다.
단단한 현무암질의 용암은 풍화속도가 더뎌 수도사나 송이버섯의 검은 머리가 되었습니다. 부드럽고 흰 화산재들은 근사한 망또나 버섯의 속살로 되살아 났습니다. 온 계곡이 송이버섯 밭이고 가끔 생뚱맞게 낙타가 앉아있기도 합니다.
이 곳 카파도키아는 기독교가 전파되던 무렵부터 굴을 파고 수도원들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백 개의 암굴교회들도 생겨났습니다. 서기 700년 후반 비쟌틴제국 때 성화상 금지가 끝난 시기여서 프레스코 벽화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사람 대여섯 들어가면 꽉 찰 그 바위 속 교회안에 예수님과 성인들이 평화롭게 거하고 계셨습니다.
작은 교회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 거대하고 화려한 유럽의 대성당에서 느끼지 못했던 소박하고 친밀한 경외감이 마음에 밀려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향해 회칠한 무덤같다고 질타하셨을까고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크고 화려한 것만 갈구하는 내 껍데기 마음을 향하신 훈계일 것입니다.
벗이여.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핍박받을 때 능력이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는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지하도시의 지하 8층, 십자가 교회당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개미집같은 지하도시에서 2-3만명이 공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슬람에 쫓겨 이 지하교회에서 신앙을 지킨 선인들의 기도로 수천년이 흐른 후, 나 같은 자가 복을 받고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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