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 교수)
지난 일요일 베터런스 데이를 기념하는 예일대학 교회 음악회에 갔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용사들의 희생을 기념하는 음악회였다. 모리스 뒤러플레 (Maurice Durufle)의 진혼 미사곡이 (鎭魂미사曲, Requiem) 가슴에 깊게 와 닿았다. 라틴어 가사에 스며있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언어의 호소력은 경건한 진혼곡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의 몸과 영혼이 음악의 선율을 타고 이 세상 밖으로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엄숙한 음악회에 앉아서도 필자는 왜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로 가득 찬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 인류의 꿈은 불가능한 것 일까?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전쟁이 없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위험과 모험을 즐기는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 또 소유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과 파괴 속에서 가장 잘 충족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매운 것을 먹기를 즐기는 존재가 인간이며, 그 사실은 인류가 전쟁을 즐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친구 의사로 부터 들은 적이 있다. 평화가 계속된다면 무절제한 섹스와 마약이 빠른 속도로 인류를 지배하게 될 것 이며, 이를 제어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제도화한 폭력이 등장하게 될 것 이라는 생각은 헉슬리 (Aldus Huxley)를 비롯한 여러 작가의 작품 속에 이미 잘 드러나 있다.
오르간의 엄숙하고 장중한 멜로디가 공상에 빠져 헤매던 나를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하였다. 바하(J.S.Bach)가 살았던 시대에 독일에서 만들어 졌다는 이 오르간은 그 소리가 청아하기로 유명 하다고 한다. 코러스는 데일리 (Eleanor Daley)의 다른 진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작자를 알 수 없는 시를 데일리는 이 진혼곡의 중요한 부분에 사용했는데, 그 시는 듣는 이들을 마치 스산한 가을날 끝없는 초원을 혼자 걷는 듯한 외로움에 빠지게 하였다.
“내 무덤에 서서 울지마세요. 나는 그 곳에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불어오는 바람 입니다. 눈위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광채 입니다. 영글은 곡식 위에 쏟아지는 햇빛 입니다. 중략- 나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 죽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추모하고 영웅화하는 우리의 관습은 통치자들이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생각해낸 상징 조작인지도 모른다. 베터런들을 잘 돌보는 것이야 당연한 도덕적인 의무라고 하더라도 과장된 언어와 화려한 의식, 장대한 기념비와 동상들을 곳곳에 세우는 것은 근본적으로 폭력을 미화하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대중들이 그것을 반복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인 필요나 사회적인 불만을 전쟁으로 해소하려 한 예는 역사에 흔히 있는 일이었다. 모든 전쟁이 다 부도덕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전쟁의 속성이 폭력과 파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전쟁으로 평화를 이루려는 모순을 이제는 버려야하지 않을까. 음악회는 쉐이커(Shaker)들이 부르던 찬송으로 막을 내렸다. “한 마리의 참새도 잊혀지지 않으리…”희생당한 모든 이들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는 믿음을 찬송한 쉐이커들은 퀘이커(Quaker)들처럼 절대 평화론자였다. 쉐이커들의 염원이었던 평화는 아직도 오지 않았는데, 그들은 이미 모두 지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평화에 비관적이던 학자들의 말이 다시 생각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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