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정빈
무량사 법사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무량사의 도서실 한쪽 구석에서 삭삭삭,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단박에 ‘이것은 터마이트가 내는 소리다’하고 단정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 저는 하와이에서 오래 사신 분으로부터 타마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 사전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타마이트가 내는 소리려니 하고 지레짐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잠시 후, 저는 그 소리를 내는 것은 터마이트가 아니라는 것, 전기 시설 중 한 곳에서 그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마음에 선입견이 있으면 선입견은 대상 위에 색깔을 덧입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터마이트에게 누명을 씌운 셈이 되었습니다.
제가 누명을 씌운 대상이 사람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저는 자주 선입견에 대해 설법을 해왔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기에 두 사람이 있으면 실제로는 여섯 사람이 있는 셈입니다.
첫 번째로, 실제의 A와 B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A가 본 A와 B가 본 B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A가 본 B와 B가 본 A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이 있으면 여섯 사람이 있으며, 그중 앞의 둘은 진실이지만 나머지 넷은 진실 비슷한 무엇, 진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헛것인 무엇이라는 것이 저의 설법의 요점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법을 해오던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터마이트에게 선입견을 덮어 씌워버렸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그때 저는 실제로는 있지도 않는 터마이트를 마음속에 떠올렸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마음속에 헛것을 떠올린 셈입니다.
실제로는 없는 대상을 보며 두려워하거나 희희거리며 웃는 사람을 정신 이상자라고 합니다.
따라서 저는 그때 잠깐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잠깐 동안의 정신 이상은, 알고보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선입견의 하수인이 되어 남에게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잘못을 덧씌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적건 많건 간에 그런 일을 했던 기억, 또는 그런 일을 당했던 기억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덧씌워진 색안경을 벗긴 상태에서 A를 A 그대로, B를 B 그대로 보기 위해 노력합시다.
내가 기존에 생각해오던 그로써 상대방을 보기보다는, 내가 지레짐작하는 그로서 상대방을 보기보다는, 떠도는 소문이나 평판에 근거해 상대방을 보기보다는,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애씁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죄 없는 상대방에게 잘못을 덧씌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럼으로써 우리는 내 마음을 보다 깨끗하고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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