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사회 성공적 세대교체 정착 못시켜 아쉬워...”
뉴저지 추석잔치 행사 때. 오른쪽부터 김진국 회장, 존 코자인 주지사, 최용식 레오니아 시의원.
지난 2000년대 초기 뉴저지 한인사회에 등장했던 40대 신진그룹이 이제는 50대 중반의 연령대로 진입하면서 그들이 바랬던 한인사회의 세대교체가 더디게 진행되거나 역류하는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또한 뉴저지한인회가 동포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오랫동안 표류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뉴저지한인회장을 역임한 김진국은 젊은 1세대의 선두주자이다. 당시 기성세대와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한인회의 활성화를 꾀했던 그는 비교적 온건한 자세로 기존 질서를 인정하는 화합형 모드를 취했기 때문에 그룹내 배타적인 성격의 강경파와는 다소 구별이 되었다.
임기를 마치고 개인 비즈니스에 전념하면서 한인사회에는 되도록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한번 몸담았던 커뮤니티인지라 완전히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더라고 솔직히 밝히면서 사명감과 리더십의 결핍으로 신뢰를 잃은 한인회의 위상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가 뉴저지한인회장에 취임한 시기는 전임자인 연인철 회장 때 창설된 추석맞이 민속대잔치를 통해 한인회가 활성화되던 무렵이었다. 전임자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고 한다면 추석잔치 일정을 하루에서 이틀로 확대시킨 것. 힘든 준비과정을 거쳤는데 일요일 하루만에 행사를 끝낸다는 게 아쉬워 토요일 열린음악회를 추가시켰더니 젊은층의 참여가 뚜렷해지더라는 것이었다.
레오니아 오버팩공원에서 열린 당시 추석잔치에는 5만명 이상의 관중이 모여들어 주목을 끌었다. 그보다 역사가 오래된 뉴욕청과협회 추석잔치에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초청된 반면 뉴저지 잔치에는 중년층이 선호하는 김홍국, 김완선, 박남정, 유열, 김세환, 박효범 등 연예인들이 초청되어 오히려 인기를 더 끌었다. 행사 수익도 짭짤했다. 적자만 나지 않아도 성공적이라 했지만 그 수익금으로 한인회 예산의 상당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다.
이런 행사는 미 주류 정치인들을 초청하는 자리가 되기 때문에 그들과 자연스럽게 유대관계를 맺을수 있는 장이 될 수 있었다. 존 코자인 주지사가 참석한 것은 물론이고 로레타 와인버그, 고든 존슨, 조안 바스 등 로칼 정치인들과의 접촉도 손쉽게 이뤄졌다. 연방 하원의원 시절부터 개인적인 우의를 다졌던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의원이 크레스킬 김회장의 자택을 방문했던 것도 이때였다.
그보다 더 보람 있었던 행사는 ‘눈꽃축제’였다. 구정을 전후해 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을 자연속으로 초청하는 행사로 고안한 것이 스키축제였다. 가까운 마운틴 클릭 스키장과 교섭 끝에 청소년과 부모들이 함께 참여하는 주말 스키강습 행사는 분위기부터 좋았다. 한인회 임원 이사들이 팔을 걷고 준비한 갈비 떡볶이 우동 컵라면 등 한국음식이 미국인들의 환영을 받을지는 미처 몰랐다. 그역시 한류라는 생각에 뿌듯한 자부심도 느꼈다. 그와같이 성공적인 연례행사들이 최근 몇 년째 중단된데 대해 그는 누구보다도 커다란 아쉬움을 표했다.
임기 중 뉴저지 지역의 순회영사 업무를 처음 시작한 것도 그였다. 초창기 준비소홀 등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매년 자리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후임 회장에게 그런 사업들을 인계하면서 그는 본업인 스니커 비즈니스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던 한인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 망설이긴 했지만 봉사자로서 한인회 경험을 얻게 된 것을 그는 보람과 함께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또한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처한다. 누님의 초청이민으로 85년 뉴욕에 정착한 이듬해 이태명이라는 스니커 비즈니스의 선구자를 만나 동업형태로 시작한 사업경험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유명 브랜드의 딜러십 따기가 하늘의 별처럼 어렵던 시기 나이키, 리박, 킴벌랜드 등 딜러십을 가지고 ‘미스터 스포츠’란 상호로 사업을 일군 이태명과의 동업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매년 그로부터 하나둘 ‘미스터 스포츠’를 인수하기 시작한 김진국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체 매장을 인수하면서 솔 오너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27년간 변함없이 한우물만 판 끝에 현재는 브롱스와 웨체스터, 커네티컷 등에 5개의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 딜러십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과도 어울려 비즈니스를 할수 있어 좋은 점도 있었다. 한때는 ‘미스터 스포츠’란 간판이 12개나 된 적도 있을 만큼 물량을 소화했고 그렇게 해서 스토어를 늘려나가는 주위 사람들을 볼 때 만족감도 느낄 수 있다.
다른 업종에 비해 매상의 기복이 심하진 않지만 패션 성격을 띤 비즈니스인만큼 유행에 민감하다. 제조원이 만든 캐달록을 보고 6개월 후의 유행을 예상해 오더를 하기 때문에 패션감각도 있어야 하고 칼자루를 쥔 딜러와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된다. 90년대에 스토어를 늘려나갈 때 딜러의 허락 없이 새로운 매장에 나이키를 전시했다가 한달간 문을 닫으면서 기존 라이슨즈마저 빼앗길 위험에 처했던 적도 있었다.
50대 중반, 아직은 열심히 일해야 할 나이기 때문에 비즈니스에 몰두하면서 그는 기회가 많은 미국에 이민 온 것을 참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이 나이에 직장을 다녔다면 벌써 명퇴 시기가 되었을 것이고, 돈을 엄청나게 버는 사업을 했을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의 평생을 두고 행운 중의 행운은 줄리어드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김주연과의 결혼을 꼽는다. 1.5세로 일곱살 차이의 와이프를 만난 것은 잉글우드의 작은 교회에 출석할 때 교회 반주자로 초빙한 그녀를 주일마다 픽업하던 역할이 평생 드라이버가 되는 행운을 잡았다고 말한다. 바이얼리니스트로 유명한 김지연은 그의 처제다. NYU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딸 리나는 요즘 허스트계 언론그룹에서 일하고 있고 아들 앤드류는 조지타운대학 1학년이다.
일찌감치 한인사회 봉사경험을 쌓은 그는 누구보다도 값진 자산을 갖고 있다. 거기에다 든든한 재력까지 겸비한 인물로 성장하면서 언젠가는 중량감 있는 봉사자로서 커뮤니티에 다시 등장할 날이 기대된다.
조종무<뉴저지 고문/ 국사편찬위 해외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