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몽은 <전 정신과 의사>
아들아이가 어디 간다고 길을 묻는다. 그 길은 내가 자주 다니는 길이라서 신이 나서 가르쳐준다. “여기 하이웨이를 타고 조금 가면 엑시트가 나오는데 그리로 빠져서 한참 가면 샤핑 몰이 나오고, 그 샤핑 몰을 지나서 바른쪽으로 돌아서 조금 가면...”그러는데 아들이 나의 말을 가로 막는다.
“엄마 그 엑시트로 나가는 길 이름이 뭔데? 그리고 한참 간다고 하는데 한참이 1마일? 아니면 2마일?” 하고 묻는다. 내가 “그 길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첫 번 엑시트로 나가면 돼.” 하고 대답했더니 아이가 “알았어,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라고 하는데 좀 실망스럽다는 표정이다.
나는 근래에 들어서 무슨 이름대신 여기...저기, 그거 하는 말을 많이 사용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저하되면서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고 그 주변 환경만이 눈앞에 떠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70전후의 나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기억력이 나빠져서 또는 머리가 잘 안돌아서 무슨 실수를 했다느니, 당황스러웠다느니 하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웃기도 하고,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하면서 걱정을 하기도 한다. 금방 벗어놓은 안경을 어디다 놓았는지 잊어버리고 온 사방으로 찾아 헤매고, 잘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그 사람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아 당황스럽고......누구는 친구 딸 결혼식이 오후 4시인데 4시라는 것만 생각했지 결혼식장까지 한 시간 걸려서 가야 되는 것은 생각지 못하고 집에서 4시에 떠났다면서 정말이지 늙으면 죽어야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고 한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기억력도, 판단력도, 무엇을 계획하는 능력도 그렇게 저하된다. 노인성 인지장애가 온 거다. 그런데 한편 나의 친구들을 보면 예전처럼 집안 살림도 잘 하고, 필요에 따라 장성한 자녀들을 돕기도 하면서 활발하게 살아간다.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보다 좀 더 너그러워진 모습을 보인다. 사실 잘 잊어버리니까 본인 스스로가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으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어느 정도의 인지장애가 오는 것은 자연적인 퇴보현상이지 그런 인지장애가 다 치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그런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주위에 보면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들이 있다. 누구는 열심히 활동하면서 무엇이든지 생각이 나면 미루지 말고 곧 바로 행동에 옮긴다든가. 그래서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 그 자리에서 전화를 한다고. 또 누구는? 중요한 것은 깊이 보관하지 않는다.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놔두어야 잊어버려도 쉽게 찾을 수가 있으니. 샤핑을 갈 때에는 샤핑할 것을 적어서 손에 들고 가고.
무엇보다도 숱한 세월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여기까지 온데 대해 감사하면서, 그런대로 아직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데 대해 만족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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