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이 해외여행을 할 때 가입하는 ‘해외여행자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을 부당 수령한 외국 영주권자 420명이 한국의 금융 당국에 의해 적발했다.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와 같은 재외동포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거주’ 국가에 머물 때는 이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약관을 무시하고, 검증 절차가 허술하다는 점을 악용해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금을 받아오다 이번에 적발된 것이다. 한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 가운데 97%가 미국 영주권자로, 보험금 부당 수령 의혹을 받고 있는 전부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영주권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인 영주권자들이 해외여행자 보험에 가입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을 가입하는데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 도저히 가입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자 보험에 가입할 경우 한 달에 약 30달러의 프리미엄만 내면 최고 2,000만원까지 질병 치료비를 받을 수 있고 사망한 경우에도 2,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이 정도 혜택이 포함된 보험을 미국 보험회사를 통해 가입하게 되면 300달러 정도를 내야 한다는 게 금융 당국의 분석이다. 미국 보험료의 10분의 1 정도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건강보험이 없는 영주권자들이 한국의 해외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는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미주 한인들의 무보험률은 26%로, 같은 아시안 중에서도 가장 높다. 실제로 주변에 보면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가장을 둔 주부나 자녀들 가운데 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 문턱을 밟지 못하고 두통제나 해열제에 의존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23일 이같은 보험사기 사건이 보도된 뒤 보이는 독자들의 반응은 이들을 비난하기보다 비싼 미국 의료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거나 얼마나 힘들었으며 그렇게까지 했겠느냐는 동정론이 더 많았다.
이번 기회에 미주 한인들을 위한 건강 보험 제도를 총체적으로 검토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최근 한국의 한 보험회사는 영주권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험 상품을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제대로 홍보가 돼 있지 않아 이를 이용하는 한인은 많지 않지만 미국 보험의 절반 비용만 내고 치료비 전부를 보전 받을 수 있어 가입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한국 정부도 여행자 보험사기 단속에만 그치지 않고 의료 사각 지대에 놓인 자국민의 건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맞이한 한국 정부가 외국에 있는 재외국민에게도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40년 전 선물한 종각 보수를 위해 수십만달러의 세금을 지원하는 한국 정부가, 건강보험이 없어 사지로 내몰리는 자국민의 건강을 챙긴다고 세금 낭비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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