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만점 건배사에 박 대통령도 “동대문!”
2시간 전부터 줄 서기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맞는 워싱턴 동포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박근혜 대통령 동포 간담회가 열린 DC 만더린 오리엔탈 호텔 그랜드 볼룸에는 오후 5시부터 참석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영사과에서는 오후 5시45분까지 도착해달라고 공지했으나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일념에 일찌감치 호텔 1층 로비는 긴 줄이 형성됐다. 초청자들은 영사과에서 마련한 부스에서 아이디를 제출해 신원확인을 한 후 행사장인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다시 그랜드 볼룸 입구에서 한미 경호팀이 설치한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후 입장할 수 있었다.
화동들 꽃 전달
6시30분쯤에는 대부분 입장이 완료됐다. 참석자들은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시간들을 보냈으며 행사 10분 전에는 대통령 수행원들이 입장했다. 박 대통령은 7시03분 한미 경호팀과 최영진 대사 등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했다. 그랜드볼룸 입구에는 화동 박세인 군(8)과 권채이 양(9)이 고운 한복을 입고 박 대통령을 기다리다 꽃을 전달했다. 두 화동은 한인 김영미 교장이 이끌고 있는 메릴랜드 웨이사이드 초등학교 학생들이다.
대통령의 패션
이날 박 대통령은 뉴욕 동포간담회와는 달리 한복 차림이 아닌 양복 정장 차림으로 등장했다. 단아한 한복 맵시를 기대했던 참석자들은 그러나 흰색 빛깔의 정장 패션도 너무 잘 어울린다며 서로 한마디씩 건넸다. 한 참석자는 “육영수 여사의 우아함을 보는 듯하다”며 잠시 눈을 감고 감회에 젖는 모습이었다.
헤드 테이블엔 누가 앉았나
대통령이 앉는 헤드 테이블은 역대 동포간담회 때마다 서로 앉기 위해 신경전이 치열한 현장이기도 하다. 단체나 개인의 위상과 관련한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과거와는 달리 라운드 테이블이 아닌 긴 회의용 테이블 방식으로 설치됐다. 박 대통령이 정면 중앙에 앉고 그 왼편으로는 김영호 민주평통 북미주 부의장이 앉고 오른편에는 유진철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이 자리했다.
다시 왼편으로 시계방향으로 린다 한 워싱턴한인연합회장, 박충기 연방 특허청 행정판사, 김경은 아메리칸 대 학생,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 마리사 천 연방 법무부 부차관보, 마크 김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박윤수 미주한인재단 명예회장, 최영진 주미대사, 남명호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코윈) 대표, 헬렌 정 마이크 혼다 연방하원의원 보좌관, 샘 윤 한인대표자회의 의장, 홍희경 워싱턴 평통 회장이 배석했다. 대통령을 제외하고도 무려 14명이 헤드 테이블을 차지한 것이다.
밀려난 지역 한인회장들
이번 대통령 방미행사에서 가장 서운한 표정이 역력한 이들은 지역 한인회장들. 홍일송 버지니아한인회장과 서재홍 수도권메릴랜드 한인회장은 공항 영접행사부터 동포간담회까지 철저히 배제됐다. 종전에는 부부 동반으로 3개 한인회장과 평통회장, 미주총연 회장이 공항 영접에 참석하는 게 관례였으나 이번에는 부부 동반도 사라지고 지역 한인회장들도 초청받지 못했다.
간담회 헤드 테이블에는 지역 한인회장들 대신에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한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홍일송, 서재홍 회장은 2순위 자리로 밀려나고 말았다.
좌석 배치와 수행원들
간담회 좌석은 대부분 지정석이 아닌 자유석이었다. 다만 주미대사관은 헤드 테이블 외에 앞자리의 몇 개 테이블은 지정석으로 정해 주요 초청자들을 배려했다. 지정석에는 한인들 외에 대통령 수행 장관과 청와대 비서진들을 골고루 섞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배치했다. 윤병세 외교장관과 조원동 경제수석은 태권도 원로 이준구 사범과 황원균 전 버지니아한인회장, 김향주 윌리엄스버그 파러리 회장 등과 같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수행단 중에 기업 대표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격려사
박 대통령의 격려사는 7시12분 시작됐다. 연단에는 프롬포터가 좌우로 설치됐으며 대통령의 말씀은 10여분간 진행됐다. 박 대통령은 서두에 지난 2007년 워싱턴을 방문했을 당시를 회고하면서 “갑자기 눈이 내려 두 시간이나 지각했는데 동포들이 끝까지 기다려 주셨다”며 “지난번 방미 때 제게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고 제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일본 우경화 문제를 언급하면서 “최근 워싱턴에서 뜻깊은 일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억울하게 빼앗겼던 대한제국 주미공사관을 동포 여러분 노력으로 되찾게 됐다”며 “워싱턴 동포사회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준 것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는 공사관 건물 되찾기에 진력한 동포사회의 노력을 인정하고 치하한 의미 있는 발언이었다.
한인들 이름 이례적 거명
박 대통령은 격려사 도중에 워싱턴 한인들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이들이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이례적으로 칭찬해 관심을 끌었다. 박 대통령은 “동포사회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창조적 차세대 리더들이 탄생하고 있다”며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1세 경제학자인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 물리학자인 박윤수 미주한인재단 명예회장, 방기문 웨스트버지니아대 교수와 박충기 미 특허법원 판사, 마리사 천 연방 법무부 부차관보 등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기도 했다.
기립박수와 스마트폰
박 대통령의 격려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십 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격려사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전원 일어나 몇 분간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그리고 대통령의 입장과 행사 중간중간에 참석자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박 대통령의 자태를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이날 사회는 장양희(미국의 소리 방송)씨가 맡았다.
유머스런 건배사
홍희경 평통 회장의 건배사는 이날 간담회의 백미였다. 대통령 격려사에 이어 건배제의를 맡은 홍 회장은 특유의 유머스러운 건배사로 장내 분위기를 훈훈하게 이끌었다. 홍 회장은 “남대문의 새로운 증축을 맞아 건배사는 동대문으로 하겠다”면서 “풀어보면 동(동포사회)와 대(대통령님)은 하나, 문(문을 열고 새 시대)란 뜻”이라고 풀이했다.
홍 회장의 선창에 따라 참석자들은 일제히 ‘동대문’을 외쳤으며 박 대통령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동대문’을 따라 외쳤다.
동포 3인의 질의
건배사 후 동포 3인이 대통령에게 질의하고 이에 답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질의자로는 최광희 미주총연 사무총장(전 메릴랜드한인회장), 이정아 PFC 에너지 애널리스트, 마이클 권 한인정치참여연대 대표가 선정돼 각각 재외동포정책과 전문직 비자 쿼터, 차세대 정치력 신장방안에 관해 물었다. 박 대통령은 이에 일일이 답변하며 재외동포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다짐했다.
공연과 만찬
행사 마지막은 축하공연이었다. 테너 심용석, 남성원, 유일과 바리톤 이광규, 김동근, 문기현, 소프라노 수잔 윌러, 메조 소프라노 장난주는 ‘조국 찬가’와 ‘그리운 금강산’, 라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깔끔하게 열창해 대미를 장식했다. 공연 후 박 대통령과 일부 수행원들은 자리를 떴으며 만찬이 이어졌다. 만찬 메뉴는 샐러드와 안심 스테이크, 새우였으며 열대과일 사바랭이 후식으로 제공됐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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