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관에서 외교부, 법무부, 청와대, 또 국회로… 대한민국 정부, 유관기관에는 다 문의해 봤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오락가락할 뿐 동포 2세들의 국적문제를 제대로 알고 정확히 답변해주는 데는 없었습니다. 너무나 놀랐습니다.”버지니아 훼어팩스에 거주하는 김모 씨는 지금도 ‘국적’이란 단어만 들으면 분노가 치솟는다고 했다. 80년대 중반에 이민 와 성실한 시민으로 살고 있는 김 씨에 ‘조국 대한민국’이 절망과 격분의 상처를 안겨준 건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의 국적 때문이었다. 김 씨의 좌충우돌 분투기가 시작된 건 불과 2년 전. UVA(버지니아대)에 다니던 아들 대니얼 김(23, 한국명 김영일) 군이 한국 장기체류를 위한 비자를 신청하면서 비롯됐다. 앞서 대니얼 군은 2학년 때 한국정부에서 시행하는 Talk(대통령 영어 봉사장학생) 프로그램에 선정돼 1년간 한국의 학교에서 봉사하고 2011년 7월에 귀국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이 모국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이 굉장히 높아져 돌아와 대견했습니다. 한국어도 더 익히고 한국을 더 알고 싶어 해서 그해 9월 다시 워싱턴 총영사관에 장기체류 비자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복수국적이라서 안 된다는 겁니다. 법이 바뀌었다네요. 제가 영주권자일 때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됐다는 겁니다.” 김 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불과 1년 전 영사관에서 멀쩡히 비자를 내줘 한국에서 1년간 봉사하고 돌아온 게 몇 달 전이었다. 영사 면담을 하고 총영사와도 통화를 했다. 하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들을 수 있는 답은 “법무부에서 안 된다고 합니다”였다. “아들은 실망을 넘어 충격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신이 왜 한국의 복수국적자가 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한국의 호적에 올리지도 안했지요.”어느 날 갑자기 미국 시민에서 한국 복수국적자로 변해버린 신분의 변화를 이 부자(父子)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씨는 국적 문제를 다루는 한국의 법무부로 전화와 이메일 문의를 시작했다. 실무관, 책임관, 과장 등 관련 공무원과 모두 연락했다 한다. “담당 공무원들마다 말이 다 다릅니다. 한 직원은 그래요. ‘그냥 미국 비자 받고 나오면 됩니다. 출입국 관리들도 복수국적자인지 모릅니다.’ 그의 말대로 했다 잘못되면 누가 책임집니까? 과장이란 사람은 일단 출생신고를 한 후 국적이탈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힘들게 그 절차를 밟다보니 아들 나이가 18세가 넘어 안 된다고 합니다. 다시 과장에 항의전화를 하니 ‘법대로 하세요’ 이렇게 나옵니다.”법무부 감사실장에도 연락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한다. “최고 악수를 두셨군요. 그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김 씨는 청와대 ‘신문고’에도 호소했다. 얼마 뒤 답변이 왔다. 청와대가 아니라 다시 법무부였다. 답변은 같았다. 김 씨는 이번에는 해외 출신 국회의원들의 문을 두드렸다. 답답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관심도 없어 보였다. 정부와 청와대, 국회까지, 마지막 방법까지 다 동원해본 그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아들의 국적문제를 접어야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국적법에 대해 제대로 아는 공무원이 한명도 없어 놀랐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다 틀리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앞으론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정부가 국민과 재외동포들에 하는 약속을 절대 믿지 않으렵니다. 누구를 위한 법인지 다시 묻고 싶군요.”
<이종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