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미(용커스 거주)
어느 날, ‘아침날씨가 선득하니 산행하기 참 좋은 날씨지요?’ 친구의 제안으로 한 산행모임에 참가했다. 요즘은 두세 사람만 모여도 ‘산행’ 또는 ‘걷기’를 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아우름이 등을 떠민 이유이기도 하다.
낯선 장소에 가거나 초면이라도 금세 친숙해지는 천성 덕이기도 하지만 이 모임에는 은퇴하고 나이든 분들이 대부분이라 눈인사만 건네도 곧바로 반가운 인사와 다정한 미소를 돌려주신다. 차로 20여분이면 닿게 되는 인근 주립공원에 도착, 주차장에서 간단한 스트레칭과 맨손 체조로 몸 근육을 풀어준 뒤 산행을 시작한다.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호숫가를 걸으며 청아한 소리로 지저귀는 새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길섶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과도 눈을 맞추어 본다.
아! 이 아름다운 날씨와 자연의 조화라니……이른 아침 알싸한 찬 공기가 달고 상큼하다. 맑은 공기를 가르며 걷는 모두의 발걸음이 이렇게 가볍고 힘 찰 수가 없다. 삼삼오오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들. 처음 만난 이들과도 친숙한 일상사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자연의 푸근함 때문일까?
은퇴 후의 달라진 생활, 자녀들의 이야기, 끝없는 대화는 긴 산책로의 길을 따라 함께 걷는 인생의 고해일 수도 있고 인생의 자랑스러운 성적표도 되었다가, 곧 웃음꽃이 되기도 한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 분도 있고, 얼마 전 큰 수술을 받고 보행이 다소 불편하다면서도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분도 있다.
미리 알아 두고 준비해야 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 관한 유용한 상식을 설명해 주는 분도 있어 마치 세미나장을 연상시킨다. 주로 건강, 자녀들과의 관계, 노후의 인생 등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서 걷는 내내 전혀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문득 이런 이야기들이 다가 올 멀지 않은 미래의 나의 현실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우리는 심중에 담았던 마음을 언어로 풀어내면서 어느새 몸과 마음이 치유 받고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마음도 혹은 차마 입 밖으로 내긴 머쓱했던 그 때의 심정도 나무와 바람과 들풀과 새 소리에 유혹 당해 조심스레 꺼내어 놓는 것이다. 결국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꽃물이 옷에 배이듯 따스한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도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통증 비슷한 마음의 상처가 눈 녹듯 사라지는 마법과도 같은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렇게 해서 반환점에 다다랐을 무렵, 준비해 온 향긋한 한 잔의 차를 나누며 서로서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함께 산행하십시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Tappan Zee브리지가 아침 안개 속에 두둥실 떠있는 듯하다.
내려오는 발걸음은 훨씬 가벼워져 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게야’라며 누군가 녹록치 못한 현실을 일깨워 준다 해도 마음속에 자리하던 온갖 세상사의 찌꺼기와 시름을 다 내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바로 이런 거겠지 싶다. 나도 오늘부턴 좀 더 자신 있게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긴다. 살아 내기에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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