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미 정치 관심갖게 만드는 바람잡이”
<사진=함지하 기자>
솔직담백한 언행으로 사람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아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바람잡이’ 박윤용 한인권익신장위원회 회장, 그는 비즈니스와 한인권익신장위 활동을 병행하며 밑바닥부터 체험한 이민사를 털어놓았다
▲바람잡이 역할로 만족
교회나 성당, 절에 다니는 한인들은 한번씩 박윤용 한인권익신장위원회 회장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1995년부터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시작한 유권자 등록운동은 9,000여명이 참여했다.
베이사이드나 플러싱, 더글라스톤 지역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은 한인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으려면 “존 박을 만나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만난 이가 96년 조셉 크라울리 연방하원의원으로 이후 그는 한미FTA 주도 및 현안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전 뉴욕 주지사 엘리엇 스피처도 민주당 예비선거 뉴욕시 감사원장으로 나오며 그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번에 퀸즈보로장 민주당 후보로 우승한 멜린다 캐츠 전 뉴욕시 의원도 후원했다.
“한인들이 힘을 하나로 모아야 이민사회의 문제가 해결된다. 힘을 모으는 방법은 투표다. 돈이 되지도 않는 일을 시간 버리면서 뭐 하러 하고 다니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한인들의 파워가 커지면 들어오는 부가가치는 돈으로 셀 수 없다. 과거에 비해 정치인들이 한인 언론사에 광고를 하고 한인권익신장위원회를 통해 자신의 선거 운동을 해달라는 것이 내게 주어진 선물이다.”
박윤용은 그가 발로 뛰어 이룬 성과에 대해 이미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해놓으면, 누군가 씨를 심어놓으면 누군가가, 다음 사람이 덕이 되지 않겠는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자유롭지 못하다. 원하는 것이 뭔지도 안 떠오른다. 한인사회에 의식 있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미국 정치인 후원모임에 나와 친분을 맺고 하는 것은 모두 우리 커뮤니티의 미래를 위해서다. 나는 미국 정치인과 연결을 해주는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박윤용은 30대 시절에는 한국 정치인 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좌충우돌 한 적도 있지만 ‘미국에 살면서 한인들이 잘 되게 해야지’ 자각이 왔고 그때 이미 아이가 셋이라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무거웠다.그래서 눈 돌리고 보니 본인의 비즈니스가 자리한 퀸즈 잭슨하잇 지역에 걸핏하면 사건, 사고를 당하고 경찰에 붙잡혀가 피해를 보는 것은 한인이었다. 힘이 없다보니 만만한 것이었다.
당시 한인유권자위원회(CKAL) 창립자인 유은희씨가 퀸즈중부한인회 회장 자리를 그에게 제의했다. 그래서 1995년 그가 회장으로, 윤기윤 내과전문의가 이사장으로 함께 일했다. 그때 한인회 담당 유대인 변호사가 유대인 이민사를 들려주면서 “한인의 힘을 키워라, 위상 강화를 위해서는 친한파 정치인을 많이 양성하라”고 조언했다.
▲한인권익신장위원회 창립
정치인들에게 가장 먼저 한인들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유권자 등록운동이었고 박윤용은 그때부터 뉴욕시내 70여개 교회, 성당 등을 찾아다녔던 것, 언론에 알려지면서 호응이 좋아졌고 다른 단체에서도 유권자 등록을 했다.
1999년 한인권익신장위가 설립됐고 20여명이 모이는 이사회는 2개월마다 열려 선거참여캠페인, 기금모금 등의 활동계획을 의논한다. “3달에 한번 정도 있는 정치인 모금행사나 무료법률상담 등에 사람들이 즐거움과 좋은 결과를 얻어 가면 보람있다.”
그는 정치인 중에서도 민주당 대통령들과 인연이 깊다. 92년 빌 클린턴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부인 힐러리와 앨 고어의 부인 티퍼 주최하에 맨하탄 크루즈 모금 파티가 열렸다. 그때 박윤용은 한인들과 그 모임에 갔고 96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았다. 윤기윤, 서준교 등 친분있는 한인들과 함께 가면서 이어진 인연이 소수계에 관심이 많은 민주당원으로, 민주당 연합회 간부로 열정적으로 활동하게 했다.
2007년 3월에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주최, 박윤용 주관으로 플러싱 한국식당에서 대선에 출마한 힐러리 민주당 상원의원 모금후원 행사가 열려 100여명의 한인 후원자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2009년 1월에는 뉴스전문채널인 뉴욕1 특집방송에 아시안 대표로 출연하여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 다녀온 소감이 대담형식으로 진행된 적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영어를 잘 했을까?
1951년 강원도 삼척 출생인 박윤용은 삼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안성 농업전문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갔고 75년 제대 후 복학하기 전 동양시멘트 회사의 외국인 현장소장의 영어 통역으로 일했다. “중학시절에 평화봉사단으로 온 미국인에게 영어를 배웠다. 팔에 영어를 써서 다니면서 보고 읽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복학하고는 오산 공군기지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며 영어를 배웠다. 내 말은 스트릿 영어다.”
졸업후 관광호텔, 청화산업주식회사를 다니다가 국제종합건설 사우디 건설 현장에 기획실 통역으로 나가 2년동안 근무했다. 그런데 건설 전문용어가 너무 어려워 통역에 한계를 느끼자 그는 초창기에 현장소장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나는 내동생 결혼도 시켜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니 1년만 버티게 도와달라. 그러면 한국에 가서 다른 회사로 다시 나올 수도 있다.”고 하자 상대방도 “나 역시 돈 벌러 나왔다”고 속내를 털어놓아 인간적으로 친해졌다. 그렇게 만난 나빌 현장소장은 박윤용이 “미국에 가고싶다”고 하자 자신의 형님을 만나라고 했고, 차관급인 그로부터 미국 비자를 받았다. 당시 뉴욕에는 누나가 간호사로 와있었다.
1980년 뉴욕에 온 박윤용은 낮에는 헌터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오후 8시30분부터 밤에는 모자 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도저히 생활이 안되어 차이나타운에서 다운조끼 패들러를 했다. 그런데 물건을 내놓자 5분만에 다 팔려버렸다. 당시 시간당 3.25달러를 받았는데 단 한번 장사에 150달러를 벌었던 것.
“이것이다”고 직감한 그는 차이나타운에서 옷 패들러 1년반 만에 돈을 모아 루즈벨트 74가에 커피샵을 차렸다가 장사가 안되어 문을 닫았다. 다시 길건너 플라워랜드 가게 자리에 유니폼 가게를 차린 것이 지금까지 28년째 하고있다.
▲내가 한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아
“매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6일간 문을 열고 있다. 남편은 비즈니스가 가장 바쁜 시간인 오후 5시~6시에 선거 캠페인 하러 나가고, 아내가 많이 참고 살았다. 애 다섯을 키우고 가르치느라 고생 많았다. 아이가 다 큰 다음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아내는 학생이다.”
21살시절 헌터칼리지에서 박윤용을 만나 4남1녀를 낳아 키우며 내조해온 아내 박명선씨는 아델파이 대학 간호학과를 내년에 졸업한다. 그는 2001년~2003년에는 여성 옷 도매업을 했는데 재단이 잘못되어 수십만 달러를 손해보았다. 이때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그만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50대에 백발이 된 그는 스스로 ‘나는 촌놈’이라며 거침없이 쏟아지는 입담이 대단하다. “건물에 투자했다가 날리고, 지금도 열심히 장사하고 산다”는 그는 자식농사만은 남부럽지 않게 잘 지었다.
장남은 세인트룩 병원 레지던트, 차남은 스토니브룩 메디칼 스쿨 졸업반, 삼남은 외무부 멕시코 영사, SVA 출신 딸은 직장인, 막내아들은 브롱스 보태니컬 가든 공동프로젝트팀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 “아들과 그 친구들을 밴에 태워서 뉴저지, 펜실베니아 등 민주당 전당대회를 비롯 미국 정치의 현장으로 많이 데리고 다녔다.
어려서는 해피밀, 커서는 짜장면을 사주면서 함께 다녀 적어도 아이들이 아버지가 사기꾼은 아니구나,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알게 했다. 하나님이 앞모습은 보여주지 않으시지만 뒷모습을 보여주셨다. 내가 한 것보다 받은 게 많다. 아이들이 부모를 믿어주고 스스럼없이 부모에 대해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니 나는 이미 내가 노력한 것 이상으로 다 받았다”는 그다.
“감자를 잘라 씨를 심을 때 파삭 썩은 씨에서 자란 감자에 열매가 많이 달린다. 이 파삭 썩은 씨눈 역할을 하고자 한다. 흑인 대통령이 나왔으니 앞으로는 아시안 대통령, 히스패닉 대통령도 기대한다.”는 그는 누구보다도 가진 것이 많은 부자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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