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장>
멀리만 느껴졌던 가을이 새벽까지 쏟아지는 폭우를 타고 산등성이를 넘어 마을까지 내려온 것은 채 한 나절도 되지 않았다. 바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며, 어디로 가는 지 묻지 않았다.
달력 한 가운데 자리한 추석이 그저 낯설기만 한 것은 몸을 움츠리며 발걸음을 다잡던 서늘한 냉기를 몸으로 느끼지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 추석… 한국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명절의 풍경은 언제부터인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커다란 감흥 없는 뉴스일 뿐이었다. 추수감사절의 칠면조 요리가 익숙해 질수록 미국 땅에서 평일에 맞는 추석이란 한국의 명절에서는 점점 이방인이 되어갔었다. 아이들에게는 어느덧 송편보다는 칠면조 구이가 더 익숙하고 기다려지는 명절의 음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올 추석은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만큼이나 텅 빈 마음으로 아프게 맞았다. 또 한해가 가고 있다는 예감, 그 예감에 늘 따라붙는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회한, 그리고 회한의 더 깊숙한 곳에 묻어 둔 어머니….
늘 웃음 띤 얼굴로 굽은 등을 내밀어 주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내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초라했던 분, 그러나 나는 참으로 무례 했었다. 그래서 남겨진 자식은 돌이킬 수 없는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추억한다. 수 만 번을 불러도 이제는 이름으로만 남으신 그분…. 만겁의 세월을 기다린들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아프게 느끼며 추석 전야를 그리움으로 설쳐야 했다.
그런데 새벽녘 문틈으로 스며든 탕국냄새, 전 굽는 냄새… 그 오래된 기억이 새벽잠을 깨웠다. 이른 아침부터 추석 차례상을 정성껏 준비해준 아내와, 멀리서 선뜻 휴가를 내고 함께해준 두 아이가 참 고마웠다. 동네잔치로 떠들썩했던 내 어머니의 푸짐한 추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미국에서 처음으로 준비한 가난하고 소박한 상 앞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린 시절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함께 맞았던 수많은 명절을 떠올리며 형제들과 전화통화를 했다. 바쁜 일상 한가운데 잠시 멈추어 서서 가족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 어머니가 가시며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제 더 이상 추석과 추수감사절 사이에서 이방인이 아니다.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추석을 맞이하고, 이 땅에서 새로 만난 인연들과 기쁘게 맞이하는 추수 감사절이 될 것이다. 먼 산으로 가을이 오고 또 하루가 지나면 발밑으로 계절이 지나갈 것이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추억은 슬픈 그리움이며, 앞으로 맞이할 또 다른 계절에 대한 벅찬 희망이다. 지난 시간을 이겨낸 감사의 마음을 김현승님의 시를 빌어 가을 하늘에 편지로 띄운다.
감사는 곧 믿음이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도 모른다/ 감사는 반드시 얻은 후에 하지 않는다/ 감사는 잃었을 때에도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는 곧 사랑이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을 알지 못한다/ 사랑은 받는 것만이 아닌/ 사랑은 오히려 드리고 바친다/ 몸에 지닌 가장 소중한 것으로/ 과부는 과부의 엽전 한 푼으로 부자는 부자의 많은 寶石으로/ 그리고 나는 나의/ 서툴고 무딘 納辯의 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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