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행위다. 그렇다고 모든 거짓말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간혹 남의 근심을 덜어주거나 즐겁게 해 주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도 있다. 또 윗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아부성 거짓말도 있다. 썩 바람직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문제는 의도가 불순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이런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은 도덕적 불감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의 거짓말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자기 아들의 미국국적과 관련해 한 해명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자리보다도 정직성이 요구되는 역사 편찬 책임자의 자리에 앉은 인사가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은 쉬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거짓말이 나쁘고 위험한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거짓말을 하는 심리에는 목적과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과 절차, 수단의 정당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그릇된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유권자들을 현혹할만한 거짓말을 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정치인들이 바로 이런 부류이다.
무늬만 보수인 정권들이 잇달아 들어선 이후 지난 수년 동안 치열한 역사논쟁이 벌어져 왔다. 역사논쟁에서 한 축을 주도해 온 세력이 이른바 뉴 라이트 역사학자들이다. 유영익 위원장도 여기에 속한다.
뉴 라이트 사관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면 일본의 식민지배로 한국의 근대화가 앞당겨 졌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대한민국에서 독재는 불가피했다는 논리로 집약된다. 이런 사관은 유영익 위원장의 지론이기도 하다. 아들의 국적과 관련해 진솔하게 해명하기보다는 둘러대기로 일관한 유 위원장의 거짓말과 그의 일그러진 사관에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결과지상주의다.
일본의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기 때문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나,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일부 국민들의 희생과 유혈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후진국 독재론은 거짓말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닮아 있다. 뉴 라이트 학자들이 최근 문제가 된 우익 역사교과서에 사실이 아닌 거짓 내용들을 버젓이 기재한 것도 이런 일그러진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유영익 위원장이 영웅처럼 받들어 온 인물은 이승만이다. 그는 이승만을 감히 세종대왕과 비교할 정도로 이승만 숭배에 빠져 있다. 이승만은 논쟁적 인물이다. 그에 대해 학계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일정부분 이승만이 건국에 기여한 공로는 있겠지만 오랜 일제 강점기 동안 그가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했다는 것 또한 여러 공문서와 기록들이 증언해 주고 있는 사실이다.
유 위원장은 1996년 쓴 글에서 이승만이 “짐승과도 같은 저열한 상태에 빠진 한국민을 기독교를 통해 거듭나게 할 목적으로 신학공부를 곁들여 했다”고 기술한 바 있다. 글 속에 드러난 한국인 비하의식은 국사편찬 책임자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저열하다’의 사전적 뜻은 ‘질이 낮고 변변하지 못하다’이다. 이렇듯 수준 낮고 변변치 못한 조선의 백성을 수렁에서 건져 낸 ‘왕족 출신의 독립운동 최고 지도자’가 이승만이라는 것이다. 그는 위대한 영웅의 출현과 강대국의 시혜만이 역사를 앞으로 끌고 나가는 힘이라는 편협한 생각에 갇혀 있다. 유 위원장의 역사인식 속에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초개처럼 버린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과 민초는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이승만 예찬에서 드러나는 그의 구원론적 사관이 ‘숭미’와 박정희로 연결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반발과 비판을 외면하면서 왜 그의 국사편찬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는지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올 77세인 유영익의 말년 출세가 개인과 가문에는 영광일지 몰라도 정권의 격은 그만큼 저열해졌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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