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정빈
무량사 법사
저는 그동안 많은 책을 썼습니다만 책에는 저마다 자기 나름의 운명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면에서 저의 책의 판매에 관한 예상은 자주 빗나갔고, 그 과정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저는 수십만 부가 팔려 베스트셀러 1위를 한 책을 낸 적도 있고, 대략 십만 권 가량 판매된 책을 여러 차례 낸 적이 있습니다. 그 점에서 저는 책에 관한 한 운명으로부터 행운을 부여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판매가 부진했던 책으로 보면 그 반대가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운명’이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사실 불교에서는 운명을 말하지 않습니다. 불교 교리는 모든 결과는 원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연기법’을 기본으로 전개됩니다. 연기법은 ‘인연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인’은 주된 원인, 즉 주인을 의미하고, 연은 인을 돕는 원인, 즉 보조인을 의미합니다. 곡식을 예로 들면 곡식 자체는 인이고, 곡식이 자라서 열매를 맺도록 돕는 흙, 물, 거름, 농부 등은 연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나 자신은 인이고, 나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은 연입니다. 이 인과 연이 만나면 그로부터 결과가 나오는데, 그것은 곡식이 열매를 맺는 것에 해당됩니다. 이 인과법, 즉 ‘원인-결과의 법칙’을 기본으로 삼아 불교의 교리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저는 인으로써 있는 힘껏 노력을 합니다. 그렇지만 연의 도움이 없이는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데, 그것은 곡식에게 있어서의 흙, 물, 거름, 농부 등의 조건이 미약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연, 즉 나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나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을 의미하므로 그 모든 것은 일일이 다 계산에 넣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디서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어디서 돕거나 방해하는 요소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계산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그것을 ‘신의 뜻’, 또는 ‘섭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동양의 격언 가운데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으로써 할 일을 다 한 다음에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동양 격언의 관점이든 불교의 관점이든 신을 믿는 종교의 관점이든 결론은 똑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그런 다음 그 결과는, 그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든,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나든 겸허하게 받아들여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만 불교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연은 결국 ‘인의 메아리’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을 잘했는데도 결과가 나쁠 때 실망하기 쉽고, 일을 잘못했는데도 결과가 좋을 때 오만해지기 쉽습니다. 이에 대해 불교는 말합니다. 그것은 인, 즉 나 자신이 전생에서부터의 오랜 세월에 걸쳐 지어온 행위의 누적, 즉 업이 그렇게 과보로 돌아온 것이라고. 그리하여 모든 연은 결국은 인이라고. 그 관점에서 볼 때 결국 운명을 창조하는 것은 인, 즉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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