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혼도 등급제로 하는 시대가 왔다. 조선시대 이후 계층이 없어진 이래 요즘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계층이 생겼다. 고등학교 성적의 등급 또한 꼴보기 싫었던 우리에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등급을 매겨진다는 것이 달가운 일은 아니다.
며칠 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던 결혼정보회사에서 남녀 등급을 매기는 기준표가 올라왔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포함 명문대에 다니면 학벌에서는 몇 점, 부모님 재력 상태에 관해 10억 30억 단위로 나뉘어 점수를 받아 총점을 계산해서 그 점수대로 등급을 매기는 기준표였다. 이밖에 나이와 외모, 연봉 심지어 성격까지 점수로 나눠 그 사람에게 등급을 붙인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여자와 남자의 점수 비중이 달랐다는 것이다. 여자 등급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외모와 나이였고 남자 등급표에서는 학벌과 연봉이었다. 남녀평등이 중요한 이 사회에서 우린 여전히 여자는 예쁘고 젊어야 하고 남자는 돈을 잘 벌어야 결혼을, 소위 말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제 결혼에 대해 더이상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꽃다운 스무살이 아니라는 것을 친한 친구의 청첩장을 받으며 알게 됐다. 어쩜 이렇게도 낯설게 느껴지는 그 청첩장의 무게에 새삼 결혼이 그렇게 머나먼 꿈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는 나에게 무한한 씁쓸함을 남겼다. 이렇게 자세하고 철저한 등급표에서 과연 몇 명이나 상위권 등급에 올라갈까. 또 하위권의 등급을 받은 이의 심정은 어떠할까 생각하면 계층이 존재 했던 그 시간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짙은 자본주의의 자취로 인해 더욱 잔인하고 냉정하다.
인생에 있어서 수많은 중요한 순간들이 있지만 결혼만큼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또 있을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한순간 당연한 양보와 철저한 희생을 기본으로 두고 시작해야 하는 결혼을 과연 등급제에 맞게 만난 사람과 맞춰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정말 나와 등급도 같고 성격도 맞고 진실된 결혼을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면 그야말로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렇게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한해가 끝나가는 가장 화려하고 가장 외로운 12월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크리스마스에 수많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연말이 주는 설레임이 있기에 12월은 가장 로맨틱하고 꿈 같은 달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연인들이 헤어지는 달이기도 하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수많은 신청서로 가장 바쁜 달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재력 또는 학력보다 그녀의 외모보다 때로는 그 사람만 봤을 때 내가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높은 등급으로 이뤄진 결혼보다 더 자주 행복할 수 있는 결혼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좋은 마음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의 깊이가 다른 것은 확실하기에 때로는 사람을 점수로 나누는 등급보단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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