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한국문단에 경사가 많은 달이다. 올해도 나는 축하객으로 문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행 여객기에 올랐었다. 서울에서 문학행사들이 줄줄이 열렸다.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들 중 수작들을 선정해 작가에게 상을 수여하는 잔치와 같은 자리였다.
원로에서 신인에 이르기까지 200여명이 참석한 행사장에는 문학인들의 기개와 자부심이 넘쳤다. 그 빛나는 이름들이 독자들을 열광시키며 대한민국의 정신을 떠받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수하고 따뜻한 자리였다. 우리 시대의 문학인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함께 문학 활동을 하며 교류하고 있는 것에 새삼 감사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에 광화문, 시청앞, 남대문, 명동, 인사동 거리를 활보했다. 내가 구석구석 잘 아는 거리들이자 연분홍 치마 휘날리던 푸른 20대, 내 청춘의 봄날들이 거리 거리에 숨어 있기에 그리움을 안고 찾아 나섰다.
광화문 거리는 대단한 거리다.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가 하면 세종문화 회관, 교보문고, 정부청사, 미 대사관 등이 모여 있는 거리다. 원래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있었는데 보수를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내로라하는 문인들, 예술인들치고 세종문화 회관을 드나들지 않는 사람은 없다. 세종회관 지하 커피숍은 서울 멋쟁이들이 모여 담소하는 예술계의 사랑방 노릇을 하고 있다.
“눈송이처럼 날아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라는 글귀를 떠올리며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 광화문 거리로 나갔다. 그날도 교보문고 외벽에는 변함없이 글판이 내걸려 있었는데, 이름 하여 ‘광화문 글판’이다. 1991년에 글판을 시작했다니 어언 20년 세월이 훌쩍 넘었다. 한 눈에 들어온 글판에는 “살얼음 속에서도 사랑으로 손을 잡으면 숨결은 뜨겁다”라고 적혀 있었다. 어떠한 처지에서든 끝끝내 끌어안고 사랑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글귀였다.
어느 해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의 글귀가 걸려 있음을 보았다.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 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사람값이 추락하고 점점 더 하찮게 여겨지는 이 시대를 향해 결코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잔잔하지만 호소력 있게 웅변한 글귀였다.
일본의 99세 된 할머니 시인 시바다 도요의 글도 있었다. “있잖아, 힘들다고 한 숨 쉬지마/ 햇살과 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였다. 세상이 힘들어도 언젠가는 내 편이 되어줄 바람도 있고 햇살도 있으니 기대와 희망을 결코 버리지 말라는 얘기다.
또 이런 글귀도 있었다. “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외면하고 무심했던 것들에 눈길을 주며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광화문 글판의 문구들은 내 안에 희망을 깨우며 다시 도전케 하고 고달픈 세상살이에 위로 받게 했다. 글들이 구절구절마다 내 가슴을 때리며 평생 삭제해서는 안 될 마음의 글판으로 진하게 새겨졌던 겨울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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