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박완서 선생님은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어도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고 썼다. 노래를 만들었던, 그리고 불렀던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에 공통분모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아하는 노래를 되풀이해서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할 것이다.
1970년 정도였다고 기억하는데, 가수 김상진 씨가 불렀던 ‘이정표 없는 거리’라는 노래를 들을 적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웃었다. ‘이리 가면 고향이요 저리 가면 타향인데...’ 하는 가사도 왠지 우스웠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하는 가사에 이르러서는 항상 소리를 내서 웃곤 했었다. 타향은 물론이거니와 고향이 무엇인지도 몰랐었고, 특히 ‘차라리’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재작년부터 나는 인근의 수영장에 다니고 있는데, 내가 사는 곳은 미국이지만 이 수영장에서 나는 영어보다 중국어를 더 많이 듣곤 한다. 그런데, 수영장에서 처음 보는 어떤 아주머니가 느닷없이 한국어로 내게 ‘피부 차아암 좋네! 얼굴에 구리무 모 발러요?’ 하고 물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에 사는 우리들(한국인들)은 각자 무슨 이유로든 ‘고향’을 떠나 ‘타향’에 자리잡은 사람들이다. 한국어를 말하고 김치가 없는 냉장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아는 그들을 만나면 무조건 반갑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들은 미국에서 학교에 다녔을지라도 한국에서 다녔던 학교의 동창회에만 참석한다. 주중에는 일터에서 콩글리쉬를 하지만, 일요일에는 교회나 절이나 성당에 가서 한국어로 맘껏 이야기하고 한식을 배불리 먹고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낸다. 무엇보다도 콩글리쉬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무슨 말을 해도 좋고 침묵해도 그만인 그 상황이 편안한 것이다.콩글리쉬를 하면 왠지 수줍고 소극적인 사람처럼 굴다가도 한국어를 말할 적에는 단박 호탕해지고 너그러워지곤 한다. 세탁소에 한번 가도 조금 멀더라도 이왕이면 한인이 경영하는 곳에 가고,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사고, 알타리무를 사다 총각김치를 담근다. 김상진 씨의 ‘고향이 좋아’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한국에 살았던 시간보다 미국에 산 시간이 훨씬 길고 자녀들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멋지게 살고 있어도, 미국에 사는 한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우리는 ‘외국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12세기에 불란서에 살았던 신학자 Hugh of St. Victor(1096-1141)는 ‘본인의 태생지만을 고집하는 자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타국의 땅이 고향의 그것처럼 편히 느껴진다면 그는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고향에서든 타향에서든 주변의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상황인 것이다’(번역 - 나효신)라고 했다.
폴란드의 시인인 헤어버트(Zbigniew Herbert, 1924–1998)의 시 ‘여행’의 일부를 인용한다. –‘여행을 떠나려거든 오랫동안 떠나시오/마치 눈을 감고 더듬어 나아가듯이 그렇게 목적 없이 방황하시오/저 거친 대지를 눈으로만이 아닌 손으로 만져서 경험하시오/그렇게 당신의 피부 전체로 이 세상을 직면하시오.(번역 – 나효신)
오는 2월 9일에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나의 작품 11개를 내가 존경하는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들, 그리고 한국/중국/일본의 전통 음악과 함께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25명의 연주자들과 결코 넉넉하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준비하고 있지만, 나는 오늘도 ‘주변의 모든 것을 새롭게 느끼며’, ‘거친 대지를 눈으로만이 아닌 손으로 만져서 경험’하고자 한다. 세상과 직면한 피부가 때로는 찢겨서 아플지라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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