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년기획 인터뷰 - 김 병 주 서강대 명예교수
▶ 공공부문서 민간영역까지 임기내 실적 고집하면 정책 무리수 잦고 일관성 잃어… 자칫 중국에 추월, 제2 정주영·이병철 나오려면 규제 풀어 투자 촉진
강의실과 금융현장은 떠났지만 노교수의 머리 속은 아직도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한국은 쇼터미즘(단기실적주의·short-termism)을 극복하지 못하면 중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김병주(75·사진) 서강대 명예교수는 ‘국가경제’에 대한 많은 진단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경제 전반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단기실적주의를 고쳐야 할 우선 대상으로 제시했다. 그는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서 단기실적을 중시하는 경향이 높다”면서 “이는 민간섹터에까지 영향을 미쳐 국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시작되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에 대해서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강하고 외환 보유액도 충분하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진단하면서도 “금리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리 대비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후세 보고 정책설계 필요
19세기까지 후진국에 불과했던 독일은 유럽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원천 가운데 하나로 ‘세대 간 분업’(Division of labour)을 꼽는다. 1980년대 학번이 진행하다 완성하지 못한 업무를 1990년대 학번이 뒤를 이어 매듭짓는 식이다.
김 교수는 “독일은 한 정부가 임기 안에 할 수 없는 큰 일은 여러 세대가 분업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다”면서 “이 때문에 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제강국이 되고 있는 중국도 사례도 꺼냈다. “중국도 집권하면 기간이 10년입니다. 5년인 우리나라에 비해 두 배나 깁니다. 더욱이 물러나도 한동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계획을 갖고 부국의 전략을 만들 수 있는 힘입니다.”시선을 한국으로 돌렸다. 노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장기 어젠다를 갖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이 많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입니다. 자연스럽게 단기성과에 얽매입니다. 문제는 파생하는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에요.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연스럽게 물갈이되고 공공섹터의 영향을 받아 민간도 비슷해집니다. 긴 안목의 계획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공공섹터는 물론 민간섹터 역시 재임기간에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수를 두게 되고 일관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더 들어볼까요. 미국 아이비리그의 유명 대학인 프린스턴대는 1746년 세워졌어요. 놀라운 것은 260여년동안 총장이 20명밖에 안 된다는 점입니다. 총장이 교육 철학대로 대학을 이끌어가려면 최소 10년 이상 재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GDP 대비 금융비중 확대는 위험
‘금융산업에도 삼성전자가 출현해야 한다.’ 한국 금융의 발전방향을 두고 흔히 밝히는 방향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국제 금융시장에서 글로벌 금융사들과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깔려 있다. 지난 정부에서는 한국이 금융허브가 돼야 한다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상일 뿐’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은 이미 정해진 규칙을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는 룰 테이커(rule-taker)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냉혹한 국제 금융시장의 현실을 이해해야 합니다.”한국 금융은 세계를 호령할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문제가 됐던 리보금리 담합 주도는 누가 했습니까. 세계금융의 룰을 만드는 대형 금융회사, 즉 SC나 HSBC·JP 모건 등이 했어요. 국제 금융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조작한 것인데 국내 금융사들이 그 틈바구니에 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그들의 먹잇감만 될 뿐이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를 국제 금융센터, 국제 금융허브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질서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한국은 국제 금융의 니치마켓(niche market·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1,000조 가계부채 해결책은 성장
화제는 올해의 한국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으로 흘러갔다. 김 교수는 국제 금융시장의 흐름에 대해서는 “위험요소가 많이 사라졌다”고 평가하면서도 3.9%로 예측된 GDP 성장률에는 몇 가지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올해는 2.4% 성장이 예상되는데 이는 2013년 1.6%보다 0.8%포인트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연합은 독일이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 당분간 돌발사태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도 올해 7% 중반대 성장이 예상되는 등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이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약화되면서 주춤하겠지만 “국제 금융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경제는 낙관만 하기에는 힘들다는 게 그의 분석. 김 교수는 “미국의 양적완화가 축소된다는 것은 그동안 미 정부가 돈을 풀어 샀던 국공채와 주택 저당채권 등의 규모를 줄인다는 의미인데 그러면 장기채권 값이 떨어지고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내놓은 경제전망을 보면 소비부문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판했다.
■규제 잣대 국내시장에만 머물러
성장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기업의 투자다. 김 교수는 그러나 “기업인들의 의욕을 꺾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가 늘어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동반성장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대기업은 두부를 만들지 말라’는 식의 규제를 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제예요. 이런 경영환경에서는 정주영과 이병철 같은 기업가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정부의 시장규제가 심한 편에 속한다”면서 “기업들이 덩치를 키워 해외로 나가려는데 국내에서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살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병주 교수는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한국 금융의 이론과 실무에 정통한 대표적인 경제학계 원로다. 미국 유학 1세대로서 고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 전 부총리, 김만제 전 부총리 등 3인방이 주축인 서강학파 1세대의 막내다.
김 교수는 이론에 그치지 않고 금융산업 현장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1986년부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고 1995년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장, 1997년 금융개혁위원회 부위원장, 2000년 은행경영 평가위원장 등을 거쳤다. 국내 대형은행 합병에서도 그는 핵심적 역할을 했다.
■약력
△1939년 경북 상주 △1961년 서울대 경제학과 △1976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1982년 재무부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회 위원 △1986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1995년 재정경제원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 △2001년 국민·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회 위원 △2005년 신한·조흥은행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 △현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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