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은 대통령이 되기 전 가장 호전적인 정치인으로 평가 됐다.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발언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 소련과의 전쟁도 불사한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막상 그가 1980년 선거에서 이긴 후 1989년 1월 퇴임할 때까지 벌인 전쟁은 1983년 그리네이다 침공이 유일하다. 카리브 해의 작은 섬 나라 마르크스 정권이 유학 간 미국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구실로 쳐들어간 이 전쟁은 19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기는 했으나 성공으로 끝났고 레이건의 인기는 치솟았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몰아붙이며 거세게 나갔지만 막상 미국인의 목숨이 걸린 군사 행동을 할 때는 지극히 조심스러웠다. 1983년 레바논 평화를 위해 파견한 미군이 폭탄 테러로 200여 명이나 죽자 치욕을 무릅쓰고 바로 철수시켰다. 더 이상 머물러 봐야 앉아 있는 오리처럼 테러의 목표물이 되는 것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냉전 승리가 값진 것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소련까지 해체했기 때문이다. 레이건이 지금까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면 불과 6년 전까지 미국 대통령이던 아들 부시의 인기는 최저점이다. 사가들의 평가도 그렇고 국민들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2003년 대량 살상 무기 폐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무기가 나오지 않자 중동 민주주의 회복을 새 목표로 세웠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4,500명의 미군이 죽고 3만2,000명이 부상당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전비만 2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희생을 치르고도 미국에 뚜렷한 이익이 돌아왔다거나 중동 민주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러나 요즘 흘러나온 뉴스는 그동안 미국이 치른 희생이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 폭탄 테러가 터져 수십 명이 죽는가 하면 미군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평정한 팔루자는 다시 수니파 과격 회교도의 손에 떨어졌다. 시아파인 말리키 총리는 이라크 내 소수파인 수니파를 포용할 아량도 능력도 없으며 자신의 집권을 가능케 한 미국보다는 자기가 망명 시절 피신했고 자신과 같은 시아파가 정권을 잡고 있는 이란에 더 가까이 가고 있다.
이라크에서 궁지에 몰린 소수 수니파들은 내전이 한창인 이웃 시리아로 건너가 반군에 합류하면서 아사드 정권과 맞서 싸우고 있다. 처음 시리아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반정 세력은 이제 알 카에다와 과격 수니파가 대세를 주도하며 미국은 아사드 편을 들지도, 반군 편을 들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2001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4년째를 맞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도 마찬가지다. 미 역사상 최장인 이 전쟁에서 2,200명의 미군이 죽고 2만3,000명이 부상당했지만 아프간 치안 확보는 요원한 꿈으로 남아 있다. 오바마는 어떻게 든 이를 아프간 인에게 떠넘기고 나오려 하지만 카르자이 대통령과의 불협화음으로 아직까지 철군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 협조적이던 아프간 인들도 미군 철수가 가시화 되면서 미국과 거리를 두며 각자 구명도생에 여념이 없다.
아랍권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이집트는 군부 쿠데타와 반정부 시위로 시끄럽고 ‘아랍의 봄’ 근원지인 튀니지와 카다피가 축출된 리비아도 소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면 중동 전역에 불안 불안한 모습이다.
물론 이는 오랜 독재에 신음해 온 아랍 민중이 자유를 찾아 나서며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힘에 눌려왔던 종파와 부족 간의 해묵은 원한과 분쟁이 민주화로 고삐가 풀리면서 터져 나온 것이기도 하다. 여기 미국이 끼어든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군 몇 십만을 보내 중동을 민주화 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 아들 부시의 생각은 점점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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