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계속되는 캘리포니아에서 용케도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서있다. 겨울비를 맞으며 청초히 살아 오르는 잎새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없이 무정한 햇살과 탁한 공기에 숨이 막힌다.
어느 중국 영화에서 천천히 매화꽃 가지를 치는 남자의 몸짓을 바라보며 경탄한 적이 있다. 나뭇가지를 한참 바라보고 서 있다가 한 가지 치고 또 한참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는 심미안을 지닌 남자의 우아한 자태로 오래오래 나무 앞에 서있었다.
요즘 새로 그리는 연작이 하얀 나뭇가지들이기에 하늘과 나뭇가지들을 세밀히 바라보기를 즐기는데, 마음이 온통 나뭇가지와 잎새 사이의 공간으로 가득하다.
동양화에선 매화를 ‘친다’고 하는 데, ‘그린다’ 라고 하지 않고 ‘친다’라고 하는 게 기막히게 멋지다. 동양화의 매 난 국 죽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의 묘사와 재현을 뛰어넘는 추상의 정신과 상상력이 놀랍다. 동양인의 사차원적 공간의식을 서양인이 알 수 있을까? 늘 의문이다.
일본 판화를 모사한 반 고흐의 매화 그림<사진>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에서 본 적이 있는데, 온 힘을 다 해 마치 칼로 도려내듯이 강인한 선을 그리는 그가 서예의 붓놀림과 멋을 꼬불꼬불 열심히 그려놓은 것에 웃음이 났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소리를 어렸을 적에 들으며 중학생인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소리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미술계에선 예순살 화가를 젊은 화가라고 한다는데, 그 뜻을 실감하곤 한다.
내가 잘 가는 중고서점엔 미술화보 책과 시집이 거의 없다. 왜 그런가 하고 물으니 비싼 미술책들을 나오는 즉시 누군가 사간다고 했다. 웰페어를 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림책들이 나오기가 무섭게 사간다고 해서 또 놀랐었다. 난 세상사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또 다시 발견한 순간이었다. 막연히 사람들은 예술에 관심이 없다고, 통념적으로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데, 사실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한인타운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패사디나의 노턴 사이먼 뮤지엄을 찾아가는 동네 할머니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시느라 늘 바쁜 분인데, 요즘은 도화지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와서는 한번 보라고 건네시곤 한다.
패사디나의 콜로라도가에 있는 노턴 사이먼 뮤지엄은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곳이다. LA에 있는 몇개의 뮤지엄 중 가장 친근히 느껴지는 아름다운 뮤지엄으로 탁월한 선택의 컬렉션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연못가에 노란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이 정말 아름답다. 볼 때마다 큰 기쁨을 주는 반 고흐가 그린 그의 어머니 초상이 있는데, 그 밝고 인자한 눈빛과 표정 그리고 살빛이 아주 친절한 어느 미국 할머니를 기억나게 한다.
그 유명한 ‘감자 먹는 사람들’의 절절한 시선이 있는 반 고흐의 소품이 있고, 드가와 마티스, 세잔의 그림이 있다. 개인 뮤지엄이라 규모가 작아서 친근하고 편안히 미술품과 정원을 즐길 수 있다. 어린이들은 그냥 들어갈 수 있어서 늘 아이들이 붐비는데, 요즘은 미니멀리즘 조각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멋진 현대 조각전이 전시 중이다.
왜 예술인가? 인생은 무상하다고 친구가 말했을 때 그림 한 장을 같이 들여다보며 유쾌해진 적이 있다. 노란 태양을 벗 삼아 커피를 마시는 시인을 그린 희한하게 통쾌한 상상력의 그림이었다. 마치 ‘이 세상보다 열 배나 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태양과 시인이 거침없는 토론을 하고 있는 듯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