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께의 새벽하늘에 손톱같이 떠있던 달에 살이 오르는 속도는 아주 빨랐다. 정월 초승을 지나 보름을 향해 가는 동안의 동네는 먹을거리가 넉넉했다. 어느 집엘 가도 고방에는 설을 지내고 남아 있는 볍쌀산자나 찰시루떡 귀부레기가 몇 조각씩은 남아 있었고 장독대 위에는 살얼음이 살짝 언 식혜도 두어 사발쯤은 남아 있었다.
대보름이 가까워 오면 얼어있던 땅도 부드럽게 살을 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바빠졌다. 남자들은 겨우내 그 많은 나뭇단들을 먹어치우고도 허기진 입을 벌리고 있는 아궁이를 위해 다시 아홉 단의 나무를 해오거나 새 농사를 위해 아홉 짐의 거름을 들로 져 나르기도 했다. 여자들은 담벼락에 매달려 그악스런 겨울바람을 견딘 무청시래기나 말려 두었던 호박고지, 가지고지, 토란줄기, 아주까리 잎이나 다래 순을 꺼내 아홉 가지 반찬을 만들었다. 묵은 빨래를 아홉 가지 해오거나 물을 길어 와도 아홉 동이를 길어왔다. 아홉이라는 숫자를 가장 상서로운 숫자로 여긴 까닭이요, 아홉은 가장 큰 숫자이니 많이 할수록 좋다는 뜻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겨울이 오면 남동생은 하루 종일 연을 날리느라 논배미나 뒷동산으로 쏘다녔다. 바람이 흘러가는 쪽으로 얼레를 풀고 조이며 손끝에 느껴지는 팽팽한 비상을 쫓아다니느라 동생의 두 볼때기는 언제나 빨갛게 터져 있었다. 그러다가 연이 살구나무 우듬지에라도 걸려버리는 날이면 난감하기 짝이 없어 했다. 나뭇가지에 걸려 바람 부는 쪽으로 꽁지만 파들거리는 가오리연을 바라보는 동생의 표정은 지난여름 장마로 물이 분 냇물에 고무신 한 짝을 떠내려 보냈을 때의 그것과 똑 닮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보름날이 지나고 나면 그 누구도 연을 가지고 놀 수 없었다.
대보름 전날이 되면 겨우내 아이들이 띄우고 놀던 하얀 연들은 날이 저물기 전에 얼레의 실을 끝까지 풀어 하늘로 날려 보내거나 달집에 던져 태워야 했다. 봄이 오면 바빠질 들녘에서 한가하게 놀이를 하는 일은 금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칠아칠, 허공으로 사라지거나 타닥거리는 불더미 속으로 타들어가는 종이 연을 바라보며 어린아이들은 좋아하던 것에도 때가 되면 이별을 해야 한다는 세상살이의 법칙을 배우기도 했다.
보름날이 지나고 나면 들판 위의 하늘은 텅 비어버리고 그 자리로 부지런한 종달새가 띄엄띄엄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보리밭에 강물같은 봄바람이 일렁일 때쯤이 되면 온 하늘은 종달새들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머리 위에 작은 왕관을 얹은 종달새들은 두엄더미를 지고 가는 농부들의 지겟다리 위에까지 내려왔다가는 다시 창공으로 튕겨져 올라가며 높은음자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봄을 그렇게 종다리들이 물고 왔다.
대보름이 가까우면 동생이 정신없이 찾아다니는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빈 깡통이었다. 언젠가 한번 맛보았던 복숭아통조림의 달콤함은 기억에 또렷한데 뒤란이며 토방 밑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빈 깡통의 행방은 묘연했다. 이미 오래 전 돌멩이를 넣어 학교를 오갈 때마다 발로 차고 다녀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든 그 깡통은 겨우내 어느 논둑 밑에서 녹슬어가고 있었다. 조바심이 난 동생의 마음이 옆집 사립문에 달아놓은 깡통으로까지 달려갔다. 빈 깡통에 돌멩이를 넣어 사립문을 열 때마다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 놓은 옆집의 초인종깡통을 탐내는 그 순간쯤이 되어서야 할머니께서는 미리 숨겨두셨던 빈 깡통을 동생에게 내미셨다.
빈 깡통 하나에 천하를 얻은 듯 신이 난 동생은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에 여념이 없으신 할아버지한테로 달려갔다. 보름날 즈음이 되면 할아버지는 도랑가에서 얄팍한 돌멩이들을 주어다 대추나무 가지 사이마다 끼워 넣으셨다. 대추나무도 그렇게 시집을 보내줘야 늘어진 가지마다 다닥다닥 대추꽃을 피우고 또 꽃이 진 자리마다 푸른 대추를 실하게 맺어 놓았다. 할아버지는 빈 깡통에 흙을 잔뜩 채워 넣은 다음 대못으로 구멍을 숭숭 뚫어 동생에게 쥐불깡통을 만들어 주셨다.
해마다 한 뼘씩이나 집터로 내려오던 번식력 좋은 생대나무들이 달집을 만들기 위해 베어졌다. 달집은 위뜸과 아래뜸이 갈리는 세 갈래 길에 세워졌다. 동네 장정들이 모여 생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볏짚과 생솔가지를 하늘 높이 쌓아올려 달집을 만들었다. 불길이 오르면 생대나무 마디 터지는 소리가 타닥거리고, 잔별같은 불똥이 튀어 올랐다. 진한 솔향기가 달빛을 타고 들판으로 퍼져나갔다. 어스름 녘부터 빈 볏가리 사이를 돌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들도, 귀밑머리 고운 동네 처녀들도, 자배기에 설거지를 담가둔 아낙네들도 달집의 가장자리에 모여 한해의 안녕과 무운을 빌었다.
타는 달집에 얼굴이 발개져 집으로 돌아오는 내 등 뒤를 푸른 달빛이 따라왔다. 윗방에는 시루 번을 두른 시루에서 차지게 쪄낸 오곡밥과 계피 향기 나던 약밥동구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잠도 안자고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윗방을 드나들며 찰밥과 약밥을 쥐어 먹던 그해 내 나이는 아홉이었던가. 열이었던가. 하늘엔 화등잔만한 보름달이 떠있었고 건넌 마을 누렁이도 쉬이 잠에 들지 못하는지 둥그런 달을 향해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오곤 했었다.
달에 살집이 오르길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도, 그 달빛을 밟아 길을 가는 사람도 없는 세상에 며칠 전부터 하얀 낮달이 떠 있다. 저 달이 그 달일까? 그 많던 종이 연들이 아칠아칠 꼬리를 흔들며 사라져간 곳을 알고 있을 그 달일까? 밥풀이 동동 떠있는 귀때동이(귀가 달린 동이) 속의 식혜에 한참씩 빠졌다 가기도 하던 바로 그 달일까? 달집이 붉게 타오르던 그날 밤, 막내삼촌이 첫사랑 그 처녀의 손을 잡고 찔레울타리 곁을 지날 즈음이면 당산나무 가지 사이로 살짝 비켜 앉아주던 바로 그 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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