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을 강타한 지난 일요일 저녁에 케네디센터 콘서트 홀에서 오랜만에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어서 만사를 제쳐두고 아내와 같이 연주회를 보러갔다. 보통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에는 자리가 다 안차서 공연 3일전부터는 89달러짜리 오케스트라 좌석을 29달러에 세일한다고 케네디센터 멤버인 나에게 이메일이 와서 자주 가본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지하실 주차료가 일년전 12달러에서 이제는 24달러로 올라서 그런대로 미안한 마음이 보상되기도 하다. 이순(耳順)이 넘은 나이에 콘트라베이스를 배운다고 현을 튕기는 나에게도 아직은 음악의 열정과 청춘의 피가 끓는다.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의 명성이 자자해서 과연 얼마나 잘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서둘러서 1시간 전에 컨서트 홀에 당도하니 소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이 자리가 꽉 찼다. 약 120명으로 구성된 LA필하모닉은 요즈음 미국에서 가장 뜨고 있는 오케스트라이다. 몇몇 오케스트라가 재정난에 허덕이지만 이 오케스트라는 LA 기부자들과 시 당국의 적극적인 후원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우고 있다. 조금은 난해한 현대작곡자 코리글리아노 심포니 1번(Corigliano Symphony No.1)은 25년 전 AIDS의 확산으로 이 병에 걸린 생들의 분노와 기억을 잘 표현해 주었다.
이어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차이코프스키의 심포니 5번(Symphony No.5 in E minor)의 연주가 시작되자 모든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젊은 천재 지휘자의 불을 뿜는 지휘에 혼이 빠져나간 듯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소치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왜 차이코프스키를 내세워 문화가 풍성한 러시아 제국을 자랑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1악장인 안단테를 지나 A알레그로를 휘몰아치는 33살의 마에스트로(Maestro)는 120명의 오케스트라 멤버 한사람 한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이 환상의 호흡으로 연주를 이끌었다. 관악기의 우렁차지만 부드러운 연주와 현악의 아름다운 음의 조화를 이루어 가슴에 와 닿는 희열은 클래식 음악이 주는 천상의 기쁨이다.
지휘자 마에스트로 두다멜은 1981년생으로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18세에 베네수엘라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그의 천재성을 인정한 LA심포니에서 2009년 상임지휘자로 초빙, 심포니 창설 100주년이 되는 2018-19시즌까지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미 타임(Time) 매거진에 2009년 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에 들었으며 모국 베네수엘라에서 15년째 지휘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이렇게 자랑스런 마에스트로가 여러 명 있다. 그 중 한 분이 정명훈이다. 서울 시향 상임지휘자로 있는 그가 이곳 케네디센터에서 서울시향 단원들과 음악을 연주할 날을 기대하며 새봄의 희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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