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영화배우 한지일(작은 사진) 씨가 주말이던 지난 11일 워싱턴에 잠깐 들렀다. 스스로를 장돌뱅이라고 부르며 1988년형 차를 몰고 다니고 있는 그는 김이 들어있는 박스 5개를 풀어놨다.
“이 지역 노인들이 생각이 났어요. 지나는 길에 뭔가 조금이라도 드리고 싶었죠. 이것 밖에는 내놓을 게 없네요.”
한 씨가 생각했다는 노인들이란 메릴랜드에 거주할 때 돌봤던 데이케어센터의 노인들을 말한다. 그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도 있었겠지만 본보와의 인연 때문에 먼저 전화를 했단다.
한 때 한국의 은막을 휘젓던 그가 IMF 이후 큰 어려움을 당하고 미국에 와 잠적하다시피 해 살아왔던 삶은 이제 어느 정도 알려졌다. 나이를 1960년생으로 속이고 접시를 닦거나 대형마트를 전전하며 매니저로 일하는 등의 고생담도 한국의 TV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과거를 뒤로 하고 연예인, 영화배우로 새 출발하라는 주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힘든 삶을 자처하는 이유는 뭘까? 남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히 나보다 남에게 시선을 주고 돕는 봉사의 맛을 알게 된 뒤부터는 정말 삶이 변했다.
메릴랜드에서 노인들과 같이 생활할 때는 음식 수발을 직접 했고 운전도 했다. 앞으로 세상을 떠나게 될 어르신들을 위한 장례 일도 돕는 봉사를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자꾸 아래로 내려가고, 주는 삶이 복되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잘 나가다 망했을 때 100억원을 한꺼번에 날리기도 했었지만 지금 그의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에 2,000달러 남짓. 그중에 반은 이런 일에 다 써버린다.
미국에 와서 그는 한지일 대신 ‘케빈 정’이란 이름을 썼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젊어 보이는 외모에 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 새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지금은 그러나 과거의 아픔을 점차 회복하면서 ‘한지일’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다시 영화를 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전 존재를 담은 ‘한지일’로 생의 후반부를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이다.
워싱턴에 오기 전 달라스와 시카고도 들러 선물을 풀었다는 그는 “필라델피아와 다른 도시에 있는 노인들도 돌아볼 계획”이라며 낡은 자주색 차의 시동을 걸었다.
한 씨와 잠시 통화를 한 후 김 박스를 따로 전달받은 우태창 워싱턴통합노인회 회장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배우가 한인 노인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고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감사한 마음 뿐”이라며 “한인 노인들 식탁이 훈훈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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