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5년 동안 나는 같은 미용사 아주머니에게 다니고 있다. 나는 의자에 앉으면서 “모범생요”, “미친년 널뛰기요”, 혹은 “사자 대가리요”, 이런 식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간략히 말한다. 그러면 그분은 마치 즉흥 연주를 하는 음악가처럼 순식간에 나를 숙제는 반드시 해 가는 모범생처럼, 혹은 실컷 널을 뛰다 급히 달려온 미친 여자처럼 바꿔주곤 한다. 내 머리카락을 자르다가 이따금씩 빗으로 의자를 톡톡 치곤, “이 소린 음악으로 어때요?”하는 내 미용사 아주머니는 차라리 시인이다!
역시 25년 동안 우리가 단골인 자동차 정비 아저씨는 자동차에 대한 것은 뭐든 척척박사!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그는 자동차 밑을 들여다보거나 해야 할 적에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야 하는데, 그럴 적에는 주머니에서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 매우 조심스럽게 바닥에 펼쳐 놓은 후에 무릎을 그 위에 대고 앉곤 한다. 스스로를 잘 대접하는 그의 모습이 참 좋다!
25년 전에 알게 된 또 한 사람은 꽃집 아줌마. 이분은 모란꽃처럼 예쁘다. 매주 금요일이면 남편이 연습실에서 집으로 오며 꽃가게에 들려서 꽃다발을 사 들고 오곤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조그만 꽃집에 나도 이따금씩 꽃 선물을 사러 가곤 하는데, 왠지 그 꽃가게를 나설 때마다 마음이 환해지곤 한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정다운 이웃!
이웃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옆집 아저씨는 혼자 산다. 피아니스트인 나의 남편은 주중에는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연습하지만 주말에는 집에서 연습을 한다. 새벽 다섯 시부터 치고 싶지만 그래도 (어험)염치를 차리느라 8시에 피아노 연습을 시작하는데, 약 30분 후면 어김없이 옆집 차고 문이 열리고 옆집 아저씨는 외출을 한다. 어쩌다 마주치면 주말마다 시끄럽게 피아노를 쳐서 미안하다는 우리에게 늘 “아니에요. 약속이 있어서 원래 나가려던 참이었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음악가들을 초대한 우리집 파티에는 반드시 그도 초대하는데, 그는 가장 먼저 도착해서 가장 늦게까지 즐겁게 논다. 한번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그가 “아, 갈 길이 머니 이제 일어나야겠어요!”했다. 그가 옆집에 사는지 모르는 우리 친구 한 사람이 “어디 사느냐”고 물었더니 “옆집에 산다”고 대답해서 우릴 웃겼다. 그래서 내가 “그 먼 곳까지 이 밤중에 찾아갈 수 있겠느냐”했더니 “내비게이션이 있어요”. 기분 좋은 이웃!
역시 25년 전에 만난 이 두 사람은 부부다. 남편은 사업가이고, 아내는 전업 주부인데 피아노를 즐겨 친다. 우리 부부가 음악가로 활동하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두 사람이다. 뉴욕이나 베를린에 공연을 하러 가면 이분들이 우리보다 더 먼저 그 도시에 도착해서 공연장 주위의 호텔에 돌아다니며 혹시 투숙객들이 요즘 볼 만한 공연이 무엇이냐 물으면 우리들이 할 공연이라고 대답해달라고 부탁하고 다닌다. 한두 번이 아니고 열 번도 넘게 그렇게 해 왔다. 부모도 형제도 그렇게는 못 할 것이다. 두 해 전 어느 날, 이 두 사람 중 남편이 내게 작곡을 의뢰했다. 음악가도 아닌데 그런 일은 드물어서 의아해하는 나에게 “몇 달 후 아내의 생일에 보석반지를 하나 더 선물하는 것보다 새로운 음악 작품 하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으로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피아노 독주곡 ‘가까이, 정답게’가 쓰여졌다.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벗들!
우리 동네에 이사 와서 만나 기분 좋은 교류를 해오고 있는 분들은 더 많이 있지만 내게 주어진 지면이 여기까지이다. 지난 일 년 동안 읽어주시고, 식품점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마주쳤을 적에 “한국일보에 글 쓰시지요?”하고 아는 척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작별 인사를 드린다. 훗날… 혹시 또 만나게 된다면, 맑은 모습으로 서로를 향해 활짝 웃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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