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친구 숙이와 함께 학교를 둘러싸고 있던 관악산에 같이 도 닦으러 다녔었다는 환이의 전공도 역시 영시였다. William Wordsworth의 시 ‘무지개’를 원어로 영문과 Band에 올려놓았다. 영문과 교수가 수두룩한 동기들 앞에,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것 같아서 좀 멋쩍었는데, 환이가 자신의 전공이었던 Wordsworth에 관한 댓글을 달아 놓았다. ‘어린이 속의 시인에서 시인 속의 어린이로’ 환이의 영문학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다. 정말 환이답다. 나는 환이 덕분에 나이 오십에 영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환이는 지금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왠지 환이가 존경도 많이 받고, 인기도 많은 선생님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환이의 논문을 읽으면서, 30여 년 전 나의 모교인 전주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던 유남두 선생님 생각났다. 지금 기억에도 고등학교 영어를 열과 성을 다하여 참 잘 가르쳐 주셨었다. 선생님께서는 영어뿐만 아니라 문학에 대한 조예도 깊으셨다. 우리 때만 해도 입시 공부가 최우선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영어 교과서에 나온 Wordsworth의 시, 수선화(Daffodils)를 암송하라는 숙제를 내 주시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번역은 반역이다. 모든 소설의 주제는 ‘사랑과 죽음’이다’. "국어를 잘 해야 영어도 잘 한다"라는 말씀도 해 주셨고, 가무잡잡한 피부에 곱슬머리가 잘 어울리던 멋쟁이여서 인기가 많으셨다. 어릴 적엔 나도 선생님같이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때, 제1지망을 영어영문학과로, 제2지망을 영어교육과로 썼던 기억. 언제 한 번 찾아 뵙고 고맙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영어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 영문과에도 들어가 보고요. 영문 독해력 잘 가르쳐 주신 덕분에 미국 와서 지금 25년이 넘게 미국 세법 해석하는 일로 밥 먹고 살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민 와서 정신 없이 살다 보니, 정말 마음뿐이었다. 작년에 한국에 나갔을 때, 고3 때 담임선생님만 잠깐 만나 뵙고 왔다. 여고 동창회 임원으로 있는 친구한테 선생님 연락처 좀 찾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교육청에 알아봐도 모른다고 했다. 환이 덕분에 찾아 뵙지는 못해도 선생님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성이면 감천. 같이 일하는 은미 자매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에 있는 선생님의 연락처를 찾아내어 전화를 드렸다. 삼십 년 전의 일이라, 내가 누군지 전혀 기억 못 하셨지만, 선생님을 기억하는 제자의 전화에 무척 반가와 하셨다. 지금 78세가 되셨다고, 14년 전에 은퇴하시고 전주를 떠나 지금은 경기도 안양에 사신다고 했다. 선생님께 전화 한 통 드리는데 삼십 년도 더 넘게 걸렸다. 선생님 댁 주소를 받아 적었다. 한국에 나가면 꼭 한 번 찾아 뵙고 싶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