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로서 내가 소속되어 있는 교단 헌법에 의하면, 목사의 고유 임무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예배와 성례를 인도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주일예배 인도와 설교를 하고, 성경공부를 준비하여 교인들을 가르치며, 그리고 성찬식과 세례의식을 주관하는 일을 하는 자가 목사인 것이다. 그래서 목사는 다른 건 몰라도 이 일들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또 그 전문성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이와 관련된 일들에 성실하고 철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고유 업무 외에도 목사가 없으면 안 되는 다른 고유 업무들이 몇 더 있다. 그것은 결혼 예식과 장례 예식 집례이다. 두 주 전 주말엔 결혼식 주례를, 지난 주말에는 장례 예배를 집전한 입장이기에, 내 자신에게도 이 고유 업무의 중차대함이 새삼 더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목사는 세례식을 통해 신앙의 첫 출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우며, 인생 중간의 새 이정표가 되는 결혼식에선 현실적인 신앙의 길로 안내해 주며, 그리고 신앙의 완성인 죽음의 자리에서는 그 마침표를 찍어 주는, 적어도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평생의 필연적 동반자가 되는 존재이다.
장례식 말고 세례나 결혼식을 집례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그들의 얼굴에서 베어나는 긍정적인 비장함 같은 것이다. 사안 자체가 다 신앙의 새로운 출발과 관련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예를 들어, 유아세례는 철저히 부모의 신앙에 기초한 의식이다. 아이가 뭘 알겠는가? 하지만 그 아이가 한 신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증표로서(과거적인 것), 또는 신자인 부모의 책임 아래 성장해 갈 것이라는 다짐 가운데(미래적인 것) 주어지는 것이 이 의식임을 감안할 때, 유아세례식 현장에서 이 예쁜 아이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아이로 키우겠노라는 부모의 결연한 의지를 읽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주례하기 전 결혼을 위한 예비 교육을 한다. 그때 만난 예비부부들은 한결같다. 희망찬 삶에 대한 의지는 물론, 신앙적 의지 또한 대단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잘 살겠노라는 결심도 돋보인다. 특별히 결혼식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신앙만큼은 ‘혼자서’가 아닌 ‘둘이 같이’ 확실하게 잘 유지해 가겠다고 서약한다. 또 일생에 딱 한 번뿐인(여러 번 하는 자들도 있지만) 최고의 사건이라는 이 일의 특성도 거기에 한 몫 거든다. 아무튼 이런 자리에서만큼은 대체로 목사가 희망하는 이 주제가 크게 곁길로 벗어나질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지속성이다. 이런 예식들을 주도하는 목사로서의 간절한 바램은 다른 게 아니다. 이들이 오늘만큼, 아니, 오늘의 절반 정도만이라도 계속 잘살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여기의 ‘잘산다’는 것은 신앙적 차원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유아세례든 세례든, 아니면 결혼이든, 그 의식이 행해지던 순간에 가졌던 굳은 결심이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짧은 시작’은 잘되었는데 ‘긴 중간’이 항상 문제가 되더라는 이야기다. 끝이 안 좋은 경우는 시작보다는 주로 중간에 문제가 생길 때다. 몸에서도 허리가 중요하듯이 말이다.
지난주 우리교회에서는 부흥회를 했다. 주제는 “나는 크리스천이다!”였다. 부흥회 할 때는 대개 강사와 주제를 먼저 상의한다. 이 주제는 절친 목사인 그와 나 사이에 서로 일치했던 주제였다. 그래서 이번 부흥회를 통해 그리스도인 ‘됨’은 그리스도인의 ‘되어감’과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음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내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 이를 때까지 꾸준하고도 성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을 촉구했다. 목사가 집례하는 장례식장은 신앙인으로서 산 내 인생의 모든 열매들을 거두는 수확의 날이다. 그날 튼실한 열매를 거둘 것인가, 아니면 바짝 마른 열매를 내놓을 것인가, 이는 전적으로 인생의 중간지점인 현재의 내 신앙생활에 달렸다. 시작은 좋았으나 헝클어져 버린 중간으로 인해 나의 결말이 초라해지지 않도록 조심하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