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 1기생인 고 김낙규씨가 한국전쟁 당시 출격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친구이자 전우인 김낙규의 치열했던 삶과 조국 사랑은 남겨진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20일 로즈힐스 장례식장에는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 1기생과 동문들이 모여 고 김낙규(86)씨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장례식 조사에 나선 이배선씨는 1949년 공군사관학교에 같이 입교한 동기 김낙규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김씨의 결혼식 때 신랑들러리를 섰던 이씨는 세월을 이기지 못한 친구의 장례식에서 동기의 삶을 회고했다.
김낙규씨는 광복 후 연세대학교를 다니던 수재였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공군사관생도를 모집하자 이배선씨와 입교했다. 모든 것이 열악하던 시절, 1기생들은 장차 국가의 공군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비행수업에 나섰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김낙규씨와 이배선씨 등 공군사관 1기생들은 수업을 받다말고 전쟁에 참전했다. 김씨와 동기들은 1951년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무스탕 전투기(F-51)를 몰고 한반도 영공을 장악했다. 고향이 황해도 재령인 김씨는 당시 강릉에 소재한 제10 전투비행단에 소속돼 60여회 출격으로 공을 세웠다.
공군사관학교 서부지회 토머스 신 회장은 “공군사관학교 1기생은 한국전쟁 때 전투기를 몰고 참전한 유일한 졸업생들”이라며 “김낙규 선배는 공중전에서 산화한 고 임택순 선배, 무스탕을 몰고 92회나 출격한 이배선 선배들처럼 모든 후배들의 귀감”이라고 전했다.
이날 김낙규씨 장례식에 참석한 동기들과 후배들은 전쟁 후 62년이 되도록 분단된 조국의 현실도 안타까워했다.
신 회장은 “김 선배는 6.25 참전 당사자로 항상 후배들을 성원하고 조국의 통일을 염원했다”며 “공군 사관학교 1기생들이 고령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이 안타깝다. 많은 분들이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 빨간마후라가 활약을 펼쳤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낙규씨는 한국전쟁 이후 공군에 계속 몸을 담았다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전후해 예비역 대령으로 예편했다. 1973년 미국 남가주로 이민 후 부인 강효영씨와 슬하에 아들 종헌씨, 딸 정림, 수임, 지현씨를 뒀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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