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제도인데다 절차도 복잡해
“왜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불만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사는 K 씨는 올 2월말 워싱턴 총영사관을 찾았다. 1996년 9월생인 아들의 국적이탈 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다. 허나 당시 부모가 한국 국적인 관계로 아들은 자동적으로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됐다 한다.
“신문에서 요즘 하도 떠들고, 주위에서도 국적이탈을 제때에 안 하면 나중에 아들이 한국 갔다가 징집될 수도 있다는 말에 겁이 나 부랴부랴 하게 됐어요. 어차피 미국에 살 건데 국적이탈을 하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한 거지요.”
K 씨는 그러나 영사관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국적이탈 신고 기한이 불과 한 달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만 18세 생일 이전에만 신고를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생일에 상관없이 그해 3월까지 마쳐야 한다고 담당 직원은 설명해줬다.
“국적이탈이 종이 한 장만 내면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갑자기 준비하려다 보니 서류도 많고 아들의 미국 여권도 만료가 돼 있어 다시 만들고 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K 씨는 근 한 달 만에 겨우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 제출할 수 있었다.
그는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산 것도 아니며, 미국에서 자라났고 또 계속 살 건데 왜 이런 불편한 구속을 당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며 “이건 분명히 잘못됐다”고 항변했다.
메릴랜드에 사는 P씨는 지난해 아들의 국적이탈 신고를 위해 영사관을 방문했다. 가벼운 마음은 담당직원의 설명을 듣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국적이탈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호적에 아들의 이름부터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P 씨는 아들은 낳은 후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결혼한 P 씨 부부는 한국에 혼인신고까지 따로 해야 했다.
“뭐가 그리 복잡한지 너무 화가 났어요. 우리 부부나 아들이 한국에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 정부에, 모국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어요.”
K씨와 P씨의 사례처럼 선천적 복수국적제로 인한 국적이탈 제도가 미주 한인들의 원성을 낳고 있다. 남자의 경우 병역의무가 부과되기 전인 만 18세 되는 해의 3월 말까지 한국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시기까지 국적이탈을 하지 않을 경우 만 37세가 될 때까지 국적이탈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유학이나 취업 등의 사유로 한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할 때 남자의 경우 병역의무가 부과된다.
그러나 국적이탈 제도가 생소해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다 이탈 절차도 까다로워 한인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국적이탈 신청시 제출서류만 해도 ▲국적이탈 신청서 1부 ▲국적이탈 사유서 ▲외국거주 사실증명서 ▲미국 출생증명서 원본 및 한글번역본 1부 ▲본인 미국 여권 ▲부, 모의 영주권/시민권 ▲본인 가족관계증명서 1부 ▲본인 기본증명서 1부 ▲부, 모의 기본증명서 각각 1부 ▲동일인 증명서 등으로 복잡한데다 소요 기간도 3개월 이상이나 걸린다. 워싱턴 로펌의 전종준 대표 변호사는 “국적이탈을 위한 복잡한 서류준비는 말할 것도 없고 국적이탈을 안하게 되면 비자발급 거부 등의 불이익을 받은 건 물론 우리 자녀들의 미국 내 공직 진출 시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 시기를 제한하는 법률은 기본권(자유권)에 위반하는 부당한 것으로 23살까지 국적이탈 신청을 하지 않으면 자동 말소되는 여성들처럼 남자들도 자동말소 되게 하는 등 한인들의 2세들을 위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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