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 수도장로교회 담임종교에서 진화의 개념이 강해지면 안 된다. 진화란 ‘발전’의 극단적인 형태로서 우등이 열등을 딛고 일어서면서 새로운 종(種)이 생성된다는 개념이다.
여기에서의 우등은 달라진 그 시대 속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개념 같은 것이다. 그 시대에 속한 사람들이 다 옳다며 찬동하는 생각을 뜻한다. 그런 우월의 개념으로 사회 구석구석을 재개편하는 게 진화일 텐데 종교까지도 그런 진화적 개념으로 재구성하려고 한다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종교란 변치 않는 근원과 가치를 향한 신봉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아야 한다. 특히 경전의 종교인 기독교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기독교의 태동기인 2000년 전이나 2000년 후인 지금이나 변치 않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한 사극을 보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저 시대는 참 힘들었겠다, 끊임없는 경계와 의심을 품고 살아야 하는 분위기 때문에, 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 속에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처지가 가져다주는 자괴감 때문에, 명분 있는 일을 하고 싶어도 통신망과 사회안전망 같은 인프라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 그 일을 추진하는 게 매우 힘들었을 거라는 것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자로 태어나면 전쟁터에 끌려가야 하는 처지 때문에, 또 그를 기다리는 처자식들은 그가 죽어올지 살아올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나날이 지냈어야 하기에….
기독교가 시작되었던 그레코로만 시대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대가 통념으로 여기는 우월의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 그들은 경계와 의심 대신 관용과 자비를 베풀었고,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절대적 가치에 헌신했고, 정치적인 불균형을 향한 항거 대신 순응을 택했고, 사회적 인프라의 열악함에 불평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 삶의 영역에서 단순한 열심을 가지고 살았다. 어쩌다 그냥 그런 게 아니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대한 동기 때문이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꿈틀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페르소나’라는 희랍어가 있다. 영어의 인격을 말하는 ‘person’과 ‘personality’가 여기서 나왔다. 이는 원래 연극에서 배우가 특정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쓰고 나오는 가면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인간의 인격은 대외적으로 보이기 위한 ‘나의 장치’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지난번에 쓴 한 칼럼에서 한 영화배우의 죽음을 돌아보며 “인생은 연기가 아니”라고 말할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자신의 모습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게, 인간 모두가 내 내면의 진솔함을 있는 그대로(이를 소위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표현하고 산다면 이 세상은 매우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외용 페르소나(가면)가 아닌,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내면의 페르소나(인격) 개조이다. 그러나 그 개조 작업은 인간 스스로 할 수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이면 그레코로만 식의 열악한 고대사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럼 좋은 방향으로 많이 개조된 시대가 지금 우리의 시대가 아니냐고. 그러나 그럴까? 민주사회가 되었다고 하는 조국을 보라. 심한 양극화현상으로 나라가 둘로 갈리고 있다. 교양과 예절로 잘 개조되었다고 해도 인간은 결국 거기서 거기인 존재라는 증거다.
겉으로는 꾸밀 순 있어도 안으로는 절대 안 되는 게 인간이다. 그러므로 내 내면의 페르소나의 개조는 오직 외부의 누군가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럼 그는 누굴까? 내가 내린 답은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뿐이다.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1퍼센트도 채 안 되었던 자들이 그레코로만 사회 전체를 흔들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다. 내 내면의 페르소나를 뜯어 고칠 수 있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교회와 사회 갱신의 유일한 해답이다.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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