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포도에는 온 우주가 담겨있다. 한 알의 포도는 소우주이고 포도송이는 대우주이다. 대우주를 담은 포도가 그려진 그림의 배경이 무한공간이다.
박소영의 포도 그림을 작은 포스트카드로 보았을 때 세포들의 기하학적 배치도 같았다. 포도이면서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 세계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그녀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던 비전화랑을 찾아가 화가를 만났다.
조용한 듯 냉철한 화가의 얘기를 들으며 한 송이의 포도 그림이 탄생한 오랜 상상과 사유의 과정을 들었다. 왜 포도를 그리느냐는 나의 질문에 처음엔 커다란 원을 그렸다고 했다. 삼각형, 사각형이 모가 난 닫힌 공간임에 비해 돌고 도는 원의 순환과 생성의 열린 영원성을 주시했는데, 어느 날 화실에서 포도를 먹다가 포도에서 기하학적 원을 보았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녀는 소재와 재료는 전통적인 사군자와 먹, 은분을 쓰고 우주와 자연이라는 전통회화의 뿌리로부터 상상과 사유를 시작한다. ‘우주와 자연’‘자연을 거닐다’라는 주제로 전시했는데, 포도송이 사이의 공간들이 확대되어 그 속을 넘나드는 자연과 우주의 지도 같기도 하고 DNA의 배치 같기도 하다.
그래서 무한히 확대된 우주적 상상 공간과 무한히 축소된 세포 공간을 제시하기도 하며 다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여 현대적 추상회화와 전통회화의 사이에서 특이한 개성을 지닌 현대회화를 창조했다.
포도송이 안에 매화가 피어있고 대나무 그림이 있다.
사군자가 지닌 상징적 의미보다는 관찰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으로 매화, 대나무를 그린다고 하는데, 이 또한 전통적 사고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며 오늘 그녀가 만나는 세상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즉, 전통회화의 주제, 소재를 가져오되 해석은 작가의 주관을 따라 현대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것이다.
오리건에 살고 있는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기를 즐겨한다고 했다. 구름의 형상들이 바뀌듯이 그녀가 그린 포도송이들은 여러 형상으로, 그녀의 상상에 따라 소우주와 대우주를 태동하며 변화한다. 하늘빛을 좋아하기에 하늘 빛 포도를 그렸다고 했다.
이 그림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포도가 있기에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기하학인가, 자연의 묘사인가, 이 무한한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녀의 상상력을 따라가 만나는 우주공간이라는 대담한 은유와 가장 오래된 전통회화와 새로운 사고와 발상으로 그녀의 그림의 현대성이 돋보이는데, 알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려 화랑에 들른 게 참 잘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간 포도그림을 그려왔는데, 앞으로도 계속 포도그림을 그릴 생각이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 자신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자연과 우주라는 뿌리로부터 끝없이 변용해 나아가는 것, 옛 그림처럼 낯익고 근원적인데 다시 새로운, 창조의 대상과 발상을 찾아가기를 기대해본다.
그림을 본 날은 나의 시선도 새로워져 사물과 자연이 스스로 하나의 공간임과 동시에 저 크고 무한한 공간 속에 있는 듯 모든 것이 우주 공간 속에 구름처럼 떠다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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