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수필가)
마지막 남아 있는 여름의 잔재들을 해맑게 드높아진 하늘 볕에 실어 보낸다. 그래도 견딜만했다고 위안을 삼으면서도 여름날은 지루하고 정체된 느낌에서 벗어 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서둘러 밀어 내고 싶은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계절! 그 끝엔 벌써 가을의 전령처럼 만개한 코스모스가 길섶에 늘어서 오색 군무를 펼치고 있다. 문득 노을에 물드는 하늘을 보다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가을 문턱을 가로 지르는 이정표를 따라 잠시 익숙하지 않은 길을 나선다. 조카와 여동생의 계획된 여행길에 선뜻 동반자가 되기를 자원한 것 이다.
푸르던 시절처럼 고동치는 심장은 아니 지만 낯선 곳으로의 떠남은 언제나 설렘이 앞서 간다. 맑고 화창한 날씨는 새벽부터 준비 하느라 설친 잠의 피곤함도 상큼 하게 씻어 주었다. 쭉 뻗은 하이웨이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창밖엔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물결이 영상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 간다.
뉴욕을 출발해서 가다 쉬다 일곱 시간을 넘게 걸려 드디어 도착한 나이아가라 폭포! 먼 길을 차안에 갇혀 갑갑하고 피로했던 몸도 어느 순간 말끔히 사라지고 버스에서 줄지어 내려온 일행들은 일제히 신음 하듯 탄성을 지르며 굉음을 향하여 가까이 더 가까이 빨려 들어간다. 어디로 부터 태동 되어 끝도 없고 쉼도 없이 떨어지고 부서져 포말 되어 다시 하늘로 차오르며 멈추지 않는 물기둥을 뿜어내는지 어떻게든 표현해 볼 언어를 찾아 헤매다가 폭포 한가운데 멈춰 서서 언어의 미아가 되어 버렸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지나온 날들의 울퉁불퉁하고 고단했던 과거는 한 점 물방울로 압축되어 어디 론가 사라져 버리고 하얗게 씻어 내린 마음에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환희의 송가만이 울려 퍼진다. 산자와 죽은 자도 잠들 것 같지 않은 저 위대한 자연 앞에서 까닭 없이 존재의 이유를 묻고 탐욕을 취하며 비굴해질 수 있을까? 언젠 가는 마주해야 할 운명의 순간이 지금 와 있다 한 들 절망에 빠지고 두려움에 쓰러질 자가 있을까?
두 눈으로는 다 담을 수 없고 작은 가슴으로도 다 품어 볼 수 없어 카메라 셔터만 계속 누르다가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석양을 맞는다. 어린 조카는 한국에서 부모를 따라 여행 온 동갑내기 여행자와 오랜 친구처럼 장난감도 나누고 정도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 놀더니 잠자리에 들자마자 엄마 옆에서 새록새록 예쁘게 잠이 들었다. 호텔방에서 내려다보는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의 풍경도 낯에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태고의 깊은 웅덩이에서 끓어오르는 듯 물기둥은 하얀 꽃구름이 되어 너울너울 춤을 추다 하늘을 타고 사라져 간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이루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이리 호에서 흘러나온 나이아가라 강이 온타리오 호를 들어가는 도중에 형성된 대 폭포라고 한다. 큰 빙하가 여러 차례 발달과 쇠퇴를 거치면서 약 만 년 전에 이 지역 빙하가 다 녹아 지금의 지형을 만들었다 한다, 문명을 앞세우며 살아온 영혼이 둔해진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천지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눈감고 침상에 누워 심장의 고동 소리로 가슴 빈 구석을 채운다.
새로운 아침에도 눈부신 햇살이 공평하게 모두를 맞아 준다. 잠들지 않은 폭포도 세수 한 듯 더욱 맑고 청아하게 목청을 높이고. 수많은 무리들이 이리 저리 몰려다니며 행복에 취해 웃고 떠들며 여행자의 자유를 누린다. 낯선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고 사소한 선물을 고르며 저마다 빠르게 또는 느리게 갈 길을 간다. 나도 무리들을 가르며 내 갈 길로 찾아 가다 잠시 멈추어 섰다. 바람결에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고 옷매무새를 여미다 쉬어 가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앞만 보고 빠르게 걷다가 순간 놓쳐 버린 귀중한 것들이 어디 이 곳 에서만 있을까?
마음은 같은 자리에서 항상 같은 꿈을 꾸는데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다. 화려한 색깔은 다 써 버리고 이제 남아 있는 갈색 물감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 넣어야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까? 작은 것으로 감사하고 나누며 살리라 하던 바람을 포효하는 폭포위에서 소리 없이 외쳐 본다. 결실의 계절에 진정한 결실을 다시 꿈꾸는 소중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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