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로마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여 온 나라가 다시 한 번 떠들썩했다. 한국에 물론 가톨릭 신자들도 많이 있고 또 지금까지 세 명의 추기경도 배출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을 가톨릭국가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이렇게 교황 방문으로 온 나라가 열광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놀랍기도 하다.
하지만 크고 작은 일에 온 나라와 전 국민이 한 통속으로 쉽게 휩쓸리는 예의 “한국정서”를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게다가 무슨 일이든 과대포장 하기 일쑤인 한국 언론들은 이번에도 마치 교황 방문으로 국격이 갑자기 크게 상승한 것처럼, 아니면 세월호 사고 등으로 받은 상처가 단번에 치유된 것처럼, 아니면 무슨 금메달이나 딴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사실 교황이 한국과 한국 국민에게 주는 가장 따가운 훈계에 대하여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도 못하고 또 그 중요성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교황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오히려 외신들이 훨씬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것은 물질만능주의에 깊숙이 빠져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경종이었다. AP통신은 물질과 사회적 지위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진리와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라고 한 교황의 가르침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지위와 부를 드러내 놓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한국사회”에서 잘 먹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쟁과 가난과 독재를 딛고 일어서 아시아의 강국으로 우뚝 선 한국이 그 동안의 희생과 인내 그리고 열심히 일한 대가로 지금의 ‘번영’을 누리고 즐기는 것은 당연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한국은 이제 ‘과소비 공화국, 사치품 공화국’으로 변했다.
루이비통, 샤넬, 구치, 불가리, 에르메스, 페라가모, 에트로, 지방시, 롱샴, 셀린, 발렌시아가, 마이바흐 등등, 미국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값비싼 브랜드 이름들이 한국에서는 대중들이 사용하는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다. 어떤 사회가 상당한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루게 되면 그 이후의 소비성향은 상품의 진정한 가치와는 별로 관계없이 지위의 상징(status symbol)을 얻으려 하고 이로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과시적 소비를 추구하게 되는, 즉 물건이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과시적 소비경쟁은 한국에만 있는 일이 아니고 어느 나라에서나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 심지어 서민층에게 까지 확산되면서 고착화되고 있다. 소득 대비 사치품의 소비는 이미 미국과 일본을 앞질렀고 전 세계의 최고의 명품 제조회사들은 한국을 이미 최대의 시장으로 삼고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자기 한 달 봉급보다 비싼 가방을 사 들고 다니는 여성들도 있고, 초등학생들에게 고급 책가방은 물론이고 모피와 승마복, 골프채를 사주는 부모들은 한국밖에 없을 것 같다. 오죽하면 ‘명품 맘’이라는 말까지 등장 하겠는가? 사실 명품이라는 말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사치품이라고 하면 되는데.
아마도 지금의 40-50대가 시작한 과소비 경쟁은 20-30대가 이어받아 더욱 심각해졌고 이제 10대 이하로 전수되고 있다. 고질병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경쟁적 과소비현상은 크레딧카드 등 개인부채와 가계부채를 크게 증가시켜 경제를 위태롭게 할 뿐만 아니라 과소비 대열에 끼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사회적 이질감, 박탈감까지 가져다 준다.
자신의 소득과 자산 수준에 맞는 합리적인 소비문화가 한국에 정착되어야 하겠다. 그런데 법치부재 같은 한국사회의 다른 문제처럼 이 문제도 사회 전반의 교육과 계몽 그리고 이에 따른 개개인의 의식개혁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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