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갑(甲)’의 횡포에 ‘을(乙)’이 눈물짓고 있다. 지난해 이른바 비행기 안에서 추태를 부린 ‘라면 상무’ 로부터 촉발된 ‘갑을(甲乙)’ 논쟁은 대리점주에게 안하무인격인 태도를 보인 한 유제품 업체의 ‘욕설팀장’의 사례에 이르러서 정점을 찍으며 오랫동안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었었다.
결국 여론에 떠밀린 해당 기업의 ‘라면 상무’는 보직이 해임 되었고, 공정거래 파문을 일으켰던 유제품 업체는 욕설을 퍼부은 영업사원의 녹취록이 공개되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며 시민들의 해당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까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최근에 일어난 유명 정치인의 골프장 성희롱 사건과 또 다른 정치인이 연루된 대리기사 집단 폭행 사건을 접하며, 또 다시 ‘수퍼갑(甲’)에 대한 ‘을(乙)’들의 분노가 인터넷 상에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사건의 진실이나 시시비비가 명백하게 가려지지는 않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사회, 경제적으로 또는 권력 관계에서 불리하고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들이 막말을 듣고 모욕을 당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힘의 남용은 태생적 우월함이나 봉건적 인식의 잔존이 남긴 병폐일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복잡한 문서에서 계약관계인 두 사물 (또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던 ‘갑을(甲乙)’의 의미가 강자와 약자의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듯하다. 흔히 보는 노사관계에서의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는 ‘갑(甲)’이 작정하고 불공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해도 ‘을(乙)’의 생사여탈권은 여전히 ‘갑(甲)’에게 있으니 둘의 관계가 평등해 지기 어려운 것이다.
요즘 새롭게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병영 안에서의 폭행사건 역시 강자인 선임병사들이 상대적 약자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함으로써 후임병사들과 그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다. 심지어 어린 자녀들의 초등학교 교실에서조차 힘의 논리가 적용되고 부모가 가진 외적 조건으로 그들만의 서열이 정해지니, 양상은 달라도 흐름은 일관되게 권위주의와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듯하다. ‘지체된 근대’ 가 한국사회의 특징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난다.
물론 불평등한 ‘갑을(甲乙)’ 관계는 한국 사회에만 있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피 지배 계급이 신분의 예속에서 벗어나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경제적 예속이 또 다른 신분 사회를 만든 게 현실이다. 사회적 가치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직업을 낮추어 보기까지 하니, 낯선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차별을 안고 사는 사회적 약자인 이 땅의 이민자들 또한 이 ‘갑을(甲乙)’ 논쟁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디에서나 나름의 예의범절이나 불문율이 있겠으나 유독 한국에서 또는 한인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어의 특성상 서열을 명확히 하지 않고는 상대를 호칭하기 어렵다는 점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높은지 낮은지 생각을 하고 호칭을 불러야 하니 처음 사람을 만나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앞에서는 ‘소통을 외치며 사회적 약자인 ‘을(乙)’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는 갑을(甲乙)’ 문화의 어두운 자화상일 것이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불평등이라면 앞으로 이세상의 무수한 ‘을(乙)’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끼도록 배려하는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실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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