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시로부터 멀어졌으면 합니다.”
시 낭송회를 위해 9일 오후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를 찾은 고은 시인은 흰 셔츠에 밀짚모자를 쓴 소박한 모습이었다.
하와이에는 15년 전 강연 이후 두 번째 방문이라는 그는 이날 일반 대중과 함께 시를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에 특히 기뻐했다.
국문학도로서 이곳 하와이에서 고은 시인을 만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선물, 태평양을 건너 온 시인에게 하와이 방문 소감만을 물을 수는 없는 법. 오직 고은 시인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을 건네보았다.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낸 시인에게, 과연 지금 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윤다경 인턴기자>
- 시대를 반영하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시인이 생각하는 지금 시대는 한 마디로 어떻게 정의될지 궁금하다.
시대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는 건 몹시 무서운 질문이다. 시대에는 고대, 중세, 전근대,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지겨웠던 근대라는 것도 있다. 게다가 근대가 끝나지도 않은 사이에 탈근대시대에 탈탈근대까지 겪고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정의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단 뜻이다. 한 인간만 보아도 동시에 여러 시대를 가지고 있는데, 이 시대를 어떻게 한 마디로 정의하랴. 그런 정의를 강요하는 시대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 그렇다면 시인이 시대를 담은 시를 썼던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산 시대는 1920-1930년대를 지냈던 김소월, 한용운이 살던 시대와도 다를 것이요, 미국에서 자란 어떤 미국 시인의 시대와도 다를 것이다. 내가 한반도에서 60-80년대를 살았기에 한반도의 언어가 나의 시대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한반도의 근대사는 복잡하다. 그런 한반도에서 산 나의 시, 나의 운명, 나의 언어는 도저히 시종일관 밝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 시는 종합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싶다.
- 요즘 사람들은 텍스트 자체를 읽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시가 여전히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텍스트가 많이 안 읽히는 요즘 시대도 괜찮은 시대다. 다만 인류를 관통하고 있는 인간 실존의 본성이 시적이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우주 리듬이 시적이듯이, 파도의 율동이 시적이듯이,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가 잦아 드는 운동이 시적이듯이, 이런 본성으로서의 시를 잃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나는 시가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여러 곳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시로부터 더 멀어졌으면 해서 다닌다. 텍스트는 지하실에 넣어두어도 괜찮으니, 부디 파도를 타고 산에도 오르길 바란다. 이것은 역설이기도 하고 질문에 대한 진지한 대답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시인도 시를 쓸 때 파도를 타고 산에도 오르나?
이미 내 몸 속에 파도가 일렁이고, 바람 속에 내가 있다(웃음).
- 하와이에 도착한 후 시상이 떠올랐는지 궁금하다.
아직이다.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시상은 자기가 오고 싶으면 오고 안 오고 싶으면 안 오지 않겠는가(웃음).
농담으로 한층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고은 시인은 한국일보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덧붙이고 강단으로 향했다.
“좋은 곳에서 사십니다. 사상이 필요 없는 곳 같지만, 사색은 해야겠죠. 자연을 사색하는 생활을 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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