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서 한국으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돌아왔을 때에는 뒤처진 진도를 따라가느라 급급했었다. 빈에서 다니던 국제학교에서는 그래도 우리학년에서 계산 속도도 제일 빠르고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곱셈 나눗셈을 배우는 덕분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학원 중심지 대치동 옆에 위치한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더 이상 곱셈 나눗셈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내내 학원도 열심히 다녀보며 수학 진도를 따라잡으려 노력했었던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독일에 가서는 이제 사년 동안 어느 정도 잊어버린 영어실력을 되찾고 한국에 있는 사이 놓친 고등학교 어휘력에 맞춰지기 위해 영어를 열심히 했었다. 그러고 보다 보니, 대학에 왔는데 우리나라의 역사, 국사에 대한 지식은 구멍 뚫린 듯 비어 있었다.
중학교 때 필수 과목이어서 그나마 읽고 외운 국사 교과서 내용은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시험 치르고 나면 다시 들여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사에 익숙하지 못하다 보니 권영민 교수님 강의 시간에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을 처음 읽었을 때 주인공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였다. 시대적 상황이 지금과는 너무 달라 주인공이 극단적으로 느껴질 뿐, 마음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해방 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 극심한 이념대립으로 난리통인 나라에서 지식인으로서의 그 정도의 고뇌가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주인공 이명준 덕분에 지식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명준을 보나, 20대 때 이런 소설을 쓴 작가 최인훈을 보나 나와 비슷한 나이 대인데 나라와 정치를 논하고 걱정할 수 있다는 게 역사, 정치, 문화 모든 방면에서 문외한같이 느껴지는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2주에 한 번 금요일마다 동아시아도서관 한국 담당 장재용 사서가 시간을 내주셔서 근현대사에 대해 배운다. 이번 주에는 KBS 조현진 기자를 모시고 한국 경제에 대해 재벌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는 것과 말주변이 별로 없어 토론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국사나 여러 가지 몰랐던 부분들을 배우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는 고민에, 당연히 아직 해본 것이 없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뭐든지 해볼 수 있는 나이라고, 다 해보라고 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한다.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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