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동안 한번도 패션쇼라는 데를 가보지 못했다. 그저 영화나, 그런 영상 매체에서 잠깐 본것 밖에는 없다. 그런데 패션 관계자가 들으면 무식한 소치라고 하겠지만 내 눈에는 패션이라는 게 영 웃기는 세계같다. 유행이라는 게 길었다가 짧았다가, 넓었다가 좁았다가, 복잡하다가 단순해지다가, 그렇게 싫증에 못이겨 자꾸 바꿔보는 게 패션이 아닐른지. 거기에다 영리한 상인은 이즈음엔 이런걸 입어야 행세할 수 있는데 넌 이거 장만 할 능력있냐?, 하는 식으로 사람 약올려 공연히 속 허한 여자들이 그 추세를 따르지 못하면 열등한 것으로 여기게끔 유도하는, 사회의 집단 사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간혹 든다.
게다가 패션쇼의 모델을 보면 너나 없이 거미처럼 팔다리만 기다란 게 얼굴은 가면 무도회의 마스크처럼 무표정하고 딴에는 도도한 표정이라고 말걸기 싫게 생긴 표정을 하고 온 몸을 배배 꼬며 배불러 움직이기 싫은 거미처럼 엉기엉기 한 걸음씩 내 디디다가 문득 서서 이쪽 짜려보고 저쪽 짜려보고, 방향을 바꿔 다시 한번 이쪽 짜리고 저쪽 짜리고, 확실히, 충분히 모든 방향을 짜려주고는 태엽이 멈췄다가 다시 감긴 인형처럼 그 이상하고도 부자유스러운 발걸음을 한발 한 발 내디딘다.
사방에선 카메라의 불빛이 번쩍이고 그걸 걸치고는 세상 어느 장소에도 나갈수 없게 요상하게 생긴 헝겊조각들이 다가올 계절에 많은 여자들이 땀흘려 번 거금을 내던져 몸에 걸치고 싶어하게 하는 선망의 신상이란다. 나는 당장 일분후의 내 생애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들은 다가오는 계절에 그 많은 여자들이 그 소중한 돈을 던져주며 걸치고 싶어 할 물건을 확실히 꼬집어 내는가? 신이 내렸나? 정말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솟아나지 않을 수 없는 예지이다.
행여 임금님의 새옷이 벌거벗은 맨몸인거라고 한 어린애가 보면 ,아빠, 저 사람들 다리 아파서 저렇게 걷는거야? 그래서 화났어? 눈도 아파?, 하고 묻지는 않을까? 내가, 그래도 명색이 예술가라고 하는 내가, 이렇게 무식한 소릴 공개적으로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무섭다. 돈을 제 수중에 넣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사는 사람들이 그 돈을 가져다 던지며 남이 이거다, 골라주는 물건을 갖기 위해 미련없이, 성취감마저 느끼며 갖다 바치는 걸 보면 나는 인간들의 그 공허한 허기가 무서워 진다.
남들이 있는 사람으로 봐준다는 그 한가지 이유때문에 벤츠도 사야하고 산 속의 집도 장만해야 한다. 남들이 지나가는 말로 해주는, 젊어졌다. 예뻐졌다,그 한 마디가 듣고 싶어 세월가면 어차피 또 생기기 마련인 주름을 없애려 주사를 맞다 실명까지도 한다. 대단한 도박이다. 얼마 전엔 분명히 얼굴을 아는 사람이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같은 얼굴로 나타났다.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내가 치매초기라 사람을 못알아보나? 무섭다. 우리 앞집에 다 떨어진, 들어 앉기도 이상하게 삐뚤게 들어앉은, 1000 SQ이 채 안되는 집이 밀리온에 나왔는데 130에, 그것도 현금으로, 나온 그 담날, 오픈 하우스를 하기도 전에 팔렸다.
그럼 우리 집값은 얼마가 되는거야? 하다가 좋기도 전에 나는 무서워지고 말았다. 학군때문이 아니라 애들이 걸어다닐 수 있다는 조건때문에, 붓 내동댕이 치고 뛰어오기 힘들어서, 아는 이가 집을 판다기에, 보지도 않고, 집 환해요?, 이 한마디 묻고 산 헌집이 이렇게 되니. 애들이 집을 따난 후엔 이 동네에 사는 게 학군 좋다고 부러워하는 젊은 엄마들에게 늘 미안했는데, 그러다 이제 간신히 손자가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어 조금 덜 미안하게 됐는데, 그게 이렇게 돈되는 물건이라니… 좋아해야 할텐데 나는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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