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에서 본 기사. 시청앞 광장에서 제1회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멍 때리다’는 말은 아무 생각없이 넋을 놓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국어사전에는 없는 비속어란다. 멍 때리기 대회의 규칙은 간단하다. 그저 최대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큰 동작을 하거나 휴대폰을 보면 질질 끌려 나간다는 게 규칙이다.
신장 박동수를 십분마다 체크해 꾸준히 안정된 심박수를 나타내면 점수를 많이 받고 관중들도 참가자를 관찰해 가장 멍하니 있는 참가자에게 스티커를 붙여주어 이 두 점수를 합산해 우승자를 결정한다. 이를 주최한 이들은 실명 밝히기를 거부하고 ‘웁쓰 걸’과 ‘저감독’으로 자신을 칭했다.
대회의 취지는 하도 속도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잠시 쉬는 체험을 하자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치 없다고 규정한 것을 가치 있는 일로 만들고 싶어 기획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들은 시청에서 허가를 얻을 수 있게 해준 담당자의 이름을 팀명으로하고 모든 경비를 자신들이 부담했다. 이 일을 기획 주최한 두 사람은 화가이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 나는 내가 지구 한구퉁이에서 혼자 끄적이는 일로 인생을 허비(?) 하고 있는 내가 그런대로 제법한 사람처럼 느껴지며 살맛이 난다.
그 옛날,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 귀족들의 카메라 대용으로 쓰여졌던 환쟁이들은 카메라를 위시해 온갖 컴퓨터의 기기묘묘한 활동으로 시각적 자극 내지 위무를 주는 일에는 한물간 존재가 됐다. 앤디 와홀 시절만해도 그럭저럭 눈도 만족시키면서 현대의 트렌디한 아이콘들을 나열해 현실이 지겨운 현대인들의 나른한 욕구와 반항을 충족, 반영시킬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캔바스를 통해 보여 줄것이 없다.
현대 미술은 이제 철학이다. 이제 화가의 의무는 마치 독가스가 가득한 밀폐된 공간에서 우리가 얼마한 기간을 견디어 낼수 있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나, 알아보려 내려지는 몰모트와도 같은 존재 같다. 종종 말하지만 나는 이즈음 사는 게 무섭다. 스마트폰이 고장났는데 죽기 기를 쓰고 안바꿔주는 상혼에 질려 다시 똑딱이 전화로 바꿨는데 그게 얼마나 폼다구 안나는 일이면서도 얼마나 잘한 일인지 새록새록 느끼고 있는 중이다.
카톡, 카톡, 하고 딸꾹질 하는 소리를 내며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수선떠는 소리도 없고 기다리는 이메일도 없으면서 버릇처럼 이메일을 체크해보던 실없는 버릇도 없어졌다. 얼마 전엔 누가 무슨 시사성있는 문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기에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이제 눈 어둡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아 무슨 의견이 없는 것 같다.
IS 의 행패가 너무나 소름끼치게 무섭긴 하지만 정부에서 알아서 대처해 줄것이고, 세월호는 유민이 아빠가 나서서 해결해 줄꺼고, 내 건강보험은 남편이 알아서 챙겨줄 테니 나야 내 마음 하나만 다스리고 있으면 될일이 아닌가. 지금 이 세상에는 나 사는 것엔 아무 상관도 없는 허접스런 말장난들이 정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많이 떠돌아다니며 정신 사납게 한다. 컴퓨터란게 생겨 물론 그때 그때 검색하는 게 엄청 쉽고 편리해 진것은 사실이지만 신문을 펼쳐들며 사선으로 쓰윽 지나쳐버릴수 있던 뉴스들을 제목따라 하나하나 열다보면 한두시간 후딱 가는 게 부지기수다.
그렇게 속절없이 몇시간을 빼앗기고 컴퓨터를 닫을 땐 금쪽같은 내 시간 돌려 도! 하고 떼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게 너무 많다. 예전엔 크리스마스가 좋았던게 연필 한자루 얻는 게 그토록 귀하고 소중했기 때문이었는데 크리스마스나 생일이 오면 제발 애들이 허접스레기 물건을 또 사들고 올까봐, 그리고 나는 또 무슨 허접스레기를 장만해 건네줘야 하나, 고민된다. 물건이 없을 땐 물건 주는 게 선물이었는데 물건에 치여 사는 이즈음에는 안주는 게 선물 같다. 이번 연말엔 멍 때리는 시간을 선물로 줄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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